김민석 국무총리(왼쪽)가 지난달 23일 J D 밴스 부통령과 만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국무총리실

워싱턴 DC의 로비스트는 인맥으로 먹고사는 직업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주변의 누구라도 연이 닿는 로비 회사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고객들로 문전성시다. 실력자와 언제든 직통이 가능한 소수를 제외하면 평범한 로비스트는 1년에 민원을 할 수 있는 횟수가 정해져 있다고 한다. 시간을 분(分) 단위로 쪼개 쓰는 상·하원 의원이나 백악관 스태프를 붙잡고 용건이 있을 때마다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할 수 없으니 ‘총알’을 아꼈다가 진짜로 중요할 때 써야 한다는 얘기다. 이건 꼭 로비가 아니어도 세상사 대부분에 들어맞는 진리다.

이재명 정부의 대미(對美) 외교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국무총리와 대통령 비서실장이 전면에 등장한다는 점이다. 둘 다 내치(內治)에 방점이 찍혀 있는 자리지만 이번 정부에선 한미 관계에도 적극 관여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정상회담 직전에는 강훈식 비서실장이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 2기 실세인 수지 와일스 비서실장을 만났다. ‘핫라인’을 개설했다는 강 실장은 김어준씨 방송에 나와 “미국 대통령 입장에서도 필요가 좀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엔 김민석 총리도 JD 밴스 부통령과 만났다. 김 총리는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 총리의 첫 공식 방미”라고 했는데,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총리가 미국의 수도를 찾은 건 건국 이후로 범위를 넓혀도 흔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프로토콜을 벗어난 이런 행보의 득실을 따져보면 그리 개운치 않다. 한미 정상이 무역 합의 타결을 선언한 후에도 파고가 험난했는데 복수의 ‘핫라인’이 제 역할을 했는지가 의문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 다 여의도에서 잔뼈가 굵은 다선 의원 출신이다. 정치인의 언어가 외교관의 언어보다는 한 박자 빠르다 보니 혼선과 오해를 낳기도 했다. 김 총리는 수개월 고대하던 밴스와의 면담에서 쿠팡, 종교 인사와 관련된 쓴소리를 들었다. ‘쿠팡 같은 기업이 한미 관계를 흔들 수 없다’는 말이 무색하게 귀국 직후 트럼프가 관세 인상 엄포를 놨고, 디지털 비관세 장벽에 대한 양국 간 인식 차가 무역 합의 전체를 흔들고 있는 모습이다.

본인들은 답변을 흐리지만 두 사람은 차기 당권 주자 또는 6월 지방 선거의 ‘메기’로 각각 거론되고 있다. 국무총리나 비서실장이 미국에 뜨면 외교 부처는 난리가 나고 인적·물적 자원이 총동원된다. 고위급 소통은 당연히 장려할 일이지만, 전 세계를 상대로 외교를 하는 백악관·국무부 입장에선 한국과의 횟수가 정해져 있는 것도 현실이다. 트럼프의 관세 인상 엄포 직후 날아온 통상 수장이 나흘을 머물고도 카운터파트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간 것처럼, 보여지는 사진 한 장에 너무 치중하다 정작 진짜로 필요할 때 민원을 하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양자 외교가 정치인의 ‘지도자’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한 수단처럼 취급되어선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