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정부가 전 국민에게 1만대만달러, 약 46만원 지급을 최근 확정했다.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을 위해 추가경정예산으로 10조원이 넘는 돈을 새로 조달한 한국과 달리, 대만은 세금이 예상보다 많이 걷혀 초과 세수를 활용했다. 대만에는 지난 4년 동안 초과 세수로 87조원이 넘는 돈이 쌓였고, 그중 이번 지원금 예산으로 약 11조원을 썼다. 없는 살림에 최대한 쥐어짜낸 한국과 달리 비교적 넉넉한 곳간에서 나온 인심이었다.
‘남는 돈’을 국민들에게 돌려준다는 취지였지만, 이마저도 반대가 심했다. 진보 성향의 집권 여당인 민주진보당(민진당)은 원래 보편적 지원금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세수 초과가 반드시 건전한 재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니, 꼭 필요한 곳에 선별적으로 추가 재정을 투입하자고 주장했다. 오히려 보수 성향의 제1 야당 국민당이 “엉뚱한 정부 사업에 돈을 써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기보다, 차라리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돌려주는 편이 낫다”고 여당을 맹렬히 몰아붙였다. 여소야대 구도인 대만에서 야당의 ‘포퓰리즘 공세’를 정부·여당이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결국 정부도 초과 세입을 국민들에게 환원한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민진당 정부는 2023년에도 경기 부양을 위해 1인당 현금 약 30만원을 뿌린 적이 있다. 2년 만에 다시 이런 결정을 내렸기에, 대만 정치권도 한국 민주당처럼 보편적인 ‘기본소득’을 실험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의외로 “지원금 지급은 ‘일회성’이라는 본래 성격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대만 정부의 기조는 매우 단호했다. 지원금 지급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대만은 대외 무역 의존도가 높아 국제 정치·경제 상황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 예산안과 실제 세입 간에 불일치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재정 흑자는 부채 상환이나 주요 정책 자금을 마련하는 데 사용해야 하며, 보편적 현금 지급을 상시화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명확한 입장을 발표했다.
기본소득 도입의 핵심 근거는 AI 시대에 가속화되는 부의 편중이다. 대만은 글로벌 AI 반도체 수요 폭증으로 세수가 남아돌 만큼 비약적 경제 성장을 이뤘지만, 일부 반도체·전자 회사들에 성과가 집중되는 문제가 한국보다 앞서 드러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소득’ 형태의 고정적 지출 때문에,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데 쓸 사회적 자본이 부족해지는 상황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AI 전환이라는 흐름에 겨우 첫 발걸음을 내디뎠고, 갈 길이 먼 ‘생산성 향상’ 단계를 위해 전폭적으로 자본을 투입해야 하는 시기다. 그런데 이미 ‘AI 3대 강국’이 된 것마냥 사회 안전망부터 챙기며 기본소득을 실험하는 것은 본말전도 아닐까. 대만을 보며 다시 점검해야 한다. ‘남는 돈’이 아니라 ‘없는 돈’으로 생색내고 있지 않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