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 오기 전, 미리 생각한 취재 아이템 중 하나는 이곳에 사는 홍콩인들에 대한 것이었다. 비슷한 운명의 두 사회인 만큼 홍콩의 저항과 자유의 메시지가 여전히 대만 사회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현실은 정반대였다.
“오늘의 홍콩은 내일의 대만”이라며 홍콩인의 망명 이주를 적극 받아들이던 대만은 최근 몇 년 새 기조를 바꿨다. 대만 국회에는 영주권 요건을 강화하는 법안이 여럿 제출됐다. 대만 필수 체류 기간을 1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가 하면, 대만 영주권 획득 시 홍콩 국적을 아예 포기하도록 하자는 내용도 있었다. 영주권 심사도 까다롭게 문턱이 높아졌다. 지난 5년간 4만3000명이 체류 허가를 받았지만 정착 허가를 받은 사람은 20%도 되지 않는 7800명뿐이었다.
대만 사회에서 홍콩은 더 이상 ‘동지’가 아니었다. 이미 중국 손에 넘어간 변질된 존재로 인식됐고, 중국 본토인이 홍콩인을 가장해 대만에 들어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살고, 유사한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를 찾아 대만으로 떠나온 홍콩 이민자들은 대만의 기류가 변하자 영국·호주·캐나다로 재(再)이민의 길을 나서는 중이다.
여기에 ‘홍콩보안법’이라는 감시 체계까지 더해졌다. 지난달 초 홍콩 경찰은 대만과 홍콩을 오가며 활동해온 독립운동 단체 ‘홍콩민주건국동맹’ 회원 4명을 홍콩보안법 위반으로 체포했다. 홍콩 경찰을 앞세운 중국의 촘촘한 감시망으로부터 대만 역시 안전하지 않은 것이다. 대만에서 활동하던 홍콩 독립운동가들은 최근 몇 년 새 크게 위축됐고, 몇 차례 취재 요청에도 응답을 하지 않았다.
영국에 할양된 1842년 이후 180년이 넘게 이어져 오던 ‘자유 홍콩’이라는 정체성이 사라지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 것 같다. 전 세계에 자유와 독립의 메시지를 전했던 홍콩의 우산 혁명이 불과 11년 전 일이다. 5년 전인 2020년 국가보안법 시행으로 홍콩의 입이 틀어막히고 손발이 묶이자, 세계인들의 관심 밖으로 사라지는 속도는 가속화됐다. 같은 편이던 한때의 동지 대만도 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 서서히 ‘손절’에 나서는 슬픈 현실이다.
속수무책 파괴된 자유 홍콩의 정체성, 과연 우리와 관계없는 남의 일일 뿐일까. 우리가 일제 통치를 피해 외국 땅에 망명 정부를 세운 것이 불과 100여 년밖에 안 된 일이다. ‘신생 공화국’ 시절 이후에도 스스로의 의지보다는 주변 강대국들의 수싸움에 국가의 운명이 더 크게 좌우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최근 세간에선 “홍콩 다음이 대만, 그다음은 한국”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서해 중간 수역에 대놓고 불법 구조물을 설치하는 중국의 행보를 보면, 이런 걱정이 결코 기우만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