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무부에서 “금요일 오후 4시에 행사가 있는데 한국 언론 대표로 참석해줄 수 있느냐”는 전화를 받았다. 6시 아이 하교 시간에 맞춰 돌아오기 힘들 것 같았다. 방과 후 학교에 추가 금액을 내면 1시간 더 맡길 수 있다는 안내를 받고서야 “가겠다”고 답했다. 사정을 들은 국무부 직원이 탄식을 했다. “나도 그날 시어머니에게 아기 봐달라고 급히 부탁했어요. 재택근무하는 다른 엄마 직원을 빼낼 수 없어서...”

지난 5월 31일 백악관을 방문한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하고있다. 백악관을 출입하는 남녀 기자들이 일제히 몰려 취재하는 모습. / EPA 연합뉴스

미국에서 일하는 부모들이 이처럼 정상 운영되는 학교에 자녀를 보내거나, 도움 줄 가족이 있거나, 베이비시터를 고용할 여력이 된다면 운이 좋은 경우다. 최근 미 전역 보육·교육 시스템이 붕괴되다시피 하면서, 어린 자녀를 둔 가정들이 정상적 경제활동을 하기 힘든 상태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래 어린이집이 줄도산해 미 4세 이하 유아 3명 중 1명만 보육기관에 다닌다. 초등 교사 부족으로 주 3~4일 단축 수업으로 파행하는 학교가 속출한다.

남의 나라 보육 대란이 우리와 무슨 상관인가 싶지만 그 ‘나비효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미 연방준비제도의 급격한 금리 인상에 따른 세계적 강(强)달러 고통과 도미노 침체 우려를 낳은 건 40년래 최악이라는 미 인플레다. 이 인플레의 근본 원인은 고유가나 저금리보다는 극심한 구인난에 따른 인건비 고공 행진, 그에 따른 모든 서비스·상품 물가 상승이다. 연준은 연일 “노동시장이 여전히 타이트하다”면서, 돈줄을 죄어 실업을 유발하려 한다.

그런데 팬데믹 이래 미국에서 증발된 노동력의 약 40%가 20~40대 워킹맘으로 꼽힌다. 코로나로 일찍 은퇴한 50대 이상 중·장년층 인력 손실보다 기업과 국가에 더 뼈아픈 집단이다. 고물가에 고금리가 걱정된다고 갑자기 어린 자녀를 내팽개치고 나올 수는 없다. 실제 미 물가지표를 보면 보육·교육계, 요양원과 병원 간호사, 복지 기관, 식당·호텔 등 여성 일자리 비중이 큰 분야가 가장 높은 인건비 상승률을 나타낸다.

미국은 보육을 나라가 책임지지 않는다. 선진국 중 유일하게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제도 없다. 경제가 잘 돌아갈 땐 별 문제 없던 시스템이다. 그러나 팬데믹 같은 비정상적 위기에선 이렇게 정책적으로 취약한 고리가 가장 먼저 고장 나게 돼있다. 이를 바로잡지 않은 채 연준 혼자 아무리 절묘한 통화 정책을 구사한들 인플레나 침체를 막기 힘들 것이다.

한국도 강달러에 따른 환율과 물가 급등, 침체 등 경제 복합 위기에 처해있다. 각종 비상 정책으로 대비한다지만 일시 방편이다. 생산 비용을 높이는 경직된 노동시장, 혁신을 가로막는 지나친 규제, 방만한 포퓰리즘 재정.... 우리 경제의 혈맥을 짓누르는 것은 무엇인가. 그걸 찾아 수술하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