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8년 9월 19일 밤 평양 능라도 ‘5월1일 경기장’에서 집단체조 ‘빛나는 조국’을 관람한 뒤 손을 맞잡고 관중석의 평양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당시 공연 끝 무렵 문 대통령은 단상에 올라 “’남쪽 대통령’으로서 김정은 위원장 소개로 인사말을 하게 되니 그 감격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 북한 군중을 상대로 한 한국 대통령의 연설은 처음이었다. /평양공동취재단


미국 연방 하원에 발의돼 있는 ‘한반도 평화 법안’은 한국 여권(與圈)이 지난 5년간 ‘평화’ ‘남북 대화’를 어떻게 다루고 이용해왔는지 잘 보여준다. 발의 과정부터 여론 조성, 홍보까지 정부가 한때 치적으로 내세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똑 닮았다.

이 법안은 한국전쟁 종전 선언, 평화협정 체결, 이산가족 상봉 등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임기 말 대선용 ‘남북 이벤트’에 목매던 문재인 정부가 두 손 들고 환영할 만한 것들이 ‘패키지’로 들어갔다. 공교롭게도 작년 5월 문 대통령과 바이든 미 대통령 간 첫 정상회담이 열리기 하루 전날 발의됐다.

사실은 문 대통령 대학 후배가 대표로 있는 미주 한인 단체가 미 민주당 의원들을 접촉해 이 법안을 추진했다.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 김경협·윤건영 의원 등 여권 핵심 인사들이 이 단체 ‘연사’로 등록돼 있다. 법안 발의 다음 날 민주당 의원 전원과 정의당 등 범여권 의원 186명이 단체로 환영 입장문을 발표했다. 일사불란했다. 워싱턴에서 “한국 정권이 막후에서 주도한 법안”이란 말이 나온 이유다.

그런데 정작 발의 이후 김이 빠졌다. “법안 통과가 목적이 맞느냐”란 생각이 들었다. 법안 통과율이 3% 남짓한 미 의회에서 ‘기계적 중립성’을 갖추는 것은 기본이다. 지지 의사를 밝힌 의원들의 민주·공화 비율을 맞추는 것이 필수라는 것이다. 다른 당 의원의 지지를 구하기 위해 발의를 1년간 미루는 경우도 봤다. 그런데 지지 서명을 한 의원 총 37명 중 공화당 소속은 단 1명이다. 나머지 36명도 민주당 내 주류와 거리가 있다.

법안이 ‘당파성’을 띠기 시작하자 작년 12월 공화당 의원 35명은 ‘비핵화 약속 없는 종전 선언에 반대한다’고 했다. 특정 법안에 단체로 반대 성명까지 내는 건 이례적이다. 법안 통과는 더욱 요원해졌다는 소리다.

더 큰 문제는 초당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이산가족 상봉’ 같은 문제마저 이 법안에 포함돼 ‘당파적 이슈’로 간주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민주·공화 의원들이 별도로 발의해 이산가족 상봉을 촉구하는 법안이 이미 하원을 통과했는데, 불똥을 맞을 처지다. 문제 법안을 공동 발의한 한 민주당 의원은 최근 지역구민들에게 “종전 선언이 아니라 이산가족 상봉에만 동의한 것이었다. 법안 수정을 요구하겠다”고 했다.

이런데도 여권은 얼마 전까지 “법안 통과 어렵지 않다” “초당적 지지를 얻고 있다”며 사실과 다른 말을 해왔다. 대선 국면서 “문 정부 평화 정책에 미국이 호응하고 있다”고 뽐내고 싶었을 것이다. 친여 매체들도 앞다퉈 ‘공공 외교의 활약’이라며 치켜세웠다. 현실은 ‘빈 껍데기’로 끝날 처지다. 이 과정을 지켜본 워싱턴 인사는 “마지막까지 ‘평화 기만 쇼’를 한 것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