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를 앞두고 전화기가 시끄럽다. ‘여론조사로 의심되는 스팸 전화입니다.’ 스팸이라는 데 뭘 망설이나. 거절. 나도, 옆에 앉은 지인도, 모두 거절이다. 그래도 결과가 발표되는 여론조사가 넘쳐난다. 2년 전 22대 총선에는 공개된 여론조사만 1200건이 넘었다.
눈앞이 혼탁할수록 명징한 것에 대한 수요는 배가되는 법. 뉴스마다 자칭타칭 ‘전문가’가 나와 ‘바닥 민심’이니 ‘샤이층’이니 떠드는 동안 전문적으로 수치를 만지는 실무자들의 속은 타들어만 간다. 높아진 사전 투표율로 유권자의 마음 읽기는 더 까다로워졌고 전화 응답률은 이미 바닥이다. 그런데도 다들 눈을 부릅뜨며 ‘몇 대 몇’이냐고 물으니 선거가 끝나면 ‘맞았는지 틀렸는지’에 대한 반성문부터 써내야 한다.
선거철마다 여의도에 판을 까는 떴다방 업자들은 결과를 맞히겠다는 장담도 모자라 이기게 해준다고 광을 판다. 싸고 빠르게 다이얼을 돌려 극적인 숫자를 만든 다음 점쟁이가 부적을 팔듯 돈을 요구한다. 접신을 했다면 차라리 이쪽이 아닐까. 여론을 호도하고 정치판을 흔들어서 혹여나 중요한 공직에 엉뚱한 사람이 앉기라도 하면 이것이 귀신이 붙은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가만 보면 좌판을 깔고 호객하는 사람들만의 문제일까 싶다. 지난 선거에서 한 언론이 ‘A 후보 38%, B 후보 36%’ 여론조사에 ‘대이변’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오차 범위는 ±3.10%p. 통계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안다. 의미 있는 격차는 6.2%p 이상이어야 한다.
기초단체장 선거는 더 심각하다. 500명 조사하면 오차 범위는 ±4.38%p. 9% 이상 이겨야 승산이 있다. 최근엔 특정 지역에서 C당 지지율이 D당을 4%포인트 앞질렀다고 했다. 뒤집혔다! 밀렸다! 헤드라인만 보면 재앙급이다. 하지만 어디에도 초라한 표본 크기(98명)와 광활한 오차 범위(±9.9%p)에 대한 지적은 없다. 설상가상으로 특정 후보를 ‘2~3%포인트 더 나오게 하겠다’며 여론조사를 주판알 튕기듯 조작한 로비스트까지 등장했다. 안 그래도 낮은 여론조사의 신뢰도를 더욱 깊이 추락시켰고, 선관위 감시 같은 강력한 규제론에 불을 지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싸고 빠른 불량품들’이지, 인력과 자금을 투입해 공들여 설계한 정통 조사가 아니다. 오히려 조사업계에는 과도한 제약보다 현실을 고려한 법적 허용이 더 절실한 상황이다.
광역단체가 17곳, 기초단체가 226곳이다. 이제 이 방대한 전장을 메울 숫자들은 어김없이 쏟아질 것이고, 언론은 자극적인 제목으로 클릭을 재촉할 것이다. 하나뿐인 투표권을 엉뚱한 데다 쓰는 ‘선거판 호갱’이 되지 않으려면 차가운 눈으로 ‘가짜 숫자’의 유혹을 걷어내야 한다. 이른바 ‘서베이 리터러시(여론조사 문해력)’를 키워야 한다. 오차범위 밖의 소음과 의뭉스러운 설문은 과감히 음소거하시라.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숫자로 이익을 보는 인간은 언제나 사기를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