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언 연세대 의대 명예교수

오늘 4월 1일은 불문학자 안응렬(1911~2005) 선생이 프랑스 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Le Petit Prince’를 ‘어린 왕자’로 번역해 조선일보에 발표한 지 정확히 70주년이 되는 날이다. 조선일보는 1956년 4월 1일 사고(社告)를 통해 안응렬 선생의 번역으로 ‘프랑스 장편 동화 어린 왕자’를 다음 날인 4월 2일부터 연재한다는 사실을 공지했다. 이 연재는 호응 속에 발표돼 5월 17일까지 모두 44회로 게재됐다. 책으로는 1960년 동아출판사가 세계문학전집을 발간하면서 ‘어린 왕자’가 처음 출판됐다. 이후로 ‘어린 왕자’는 단행본으로 발행돼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지금도 매년 수십 종의 번역서들이 다양한 디자인으로 편집·출판되고 있다.

‘어린 왕자’는 생텍쥐페리가 조국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함락되자 미국으로 망명했을 때 집필해 1943년 ‘레이날과 히치콕(Reynal & Hitchcock)’ 출판사를 통해 영어와 프랑스어로 처음 발행했다. 지금은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다양한 언어로 번역돼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출판되는 책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누구나 다 좋아하는 ‘Le Petit Prince’가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번역됐는지를 되돌아보고자 한다.

1955년 주한 프랑스 공사관 통역관이던 안응렬 선생은 약 1년간의 파리 주재원 근무를 마치고 귀국할 때 프랑스 동료가 선물로 준 ‘Le Petit Prince(갈리마르·1955년 판)’를 읽고 감동을 받았다. 그는 단숨에 번역해 1956년 조선일보에 연재하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필자가 안응렬 선생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은 책 제목을 ‘어린 왕자’라고 번역했다는 사실이다.

1950년대 당시에는 ‘소공자(小公子·Little Lord Fauntleroy)’ ‘소공녀(小公女·A Little Princess)’ ‘작은 아씨(Little Women)’ 등과 같은 번역서들이 있어 ‘Le Petit Prince(The Little Prince)’를 ‘소왕자(小王子)’나 ‘작은 왕자’ 등으로 제목을 정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안응렬 선생이 ‘순수하고, 유순하며, 길들여지지 않은, 선입견이나 편견이 없는, 가능성이 많은, 평화롭고 희망이 있는’ 등 다양한 느낌을 주는 ‘어린’이라는 우리말을 선택한 덕분에 지금도 모든 역자가 ‘어린 왕자’라고 제목을 붙이고 책을 출판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동화 ‘어린 왕자'의 연재를 알리는 1956년 4월 1일 조선일보 사고(社告). 신문 아래 놓인 책은 안응렬 교수가 번역에 사용한 1955년 불어판 ‘어린 왕자' 원본, 옆에 놓인 원고지는 안혜란 씨가 초등학생 시절 출판사에 보내기 위해 받아 적은 안응렬 교수의 번역본이다. 원고지 첫 장은 안응렬 교수가 직접 썼다.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안응렬 선생이 ‘어린 왕자’로 번역한 것은 안 선생이 1956년 창립한 ‘새싹회’ 활동을 하면서 한글과 어린이에 대한 사랑이 깊었기 때문인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문학과는 거리가 먼 소아과 의사인 필자가 생전에 한 번도 뵌 적 없는 선생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어린이 사랑’이라는 마음의 공통점이 있어서다.

번역가 박진영은 ‘번역가의 머리말’(2022년)이라는 책에서 “번역가는 원작을 빛내고 원저자가 돋보이게 만드는 일을 소명으로 삼는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안응렬 선생이 ‘Le Petit Prince’를 ‘어린 왕자’라는 제목으로 번역한 그 자체만으로도 번역가의 소명을 가장 아름답고 완벽하게 수행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늘나라에 계신 안 선생께 ‘어린 왕자라고 번역해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감사의 인사를 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