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연 대한의사협회 법제이사·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

최근 필수 의료 현장은 그야말로 고사 위기다.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등 생명과 직결된 분야에서 전공의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논의에 가려져 있지만, 이들을 현장에서 내모는 가장 날카로운 비수는 ‘언제든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형사처벌의 공포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료계가 요구해 국회에 계류 중인 ‘의료사고 처리 특례법’은 단순히 의사들의 방패를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무너져가는 필수 의료의 최후 보루를 세우고, 환자에게는 더 빠르고 실질적인 구제를 제공하기 위한 ‘민생 안보법’에 가깝다.

대한민국 의사들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은 사법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 선의에 기반한 의료 행위 과정에서 발생한 불의의 사고조차 ‘업무상 과실치사상’이라는 굴레를 씌워 형사처벌로 몰아넣는 ‘처벌 만능주의’가 팽배하다. 결과는 참담하다. 의사들은 위험한 수술을 기피하는 ‘방어 진료’에 치중하게 된다. 젊은 의사들은 사법 리스크가 낮은 분야로 쏠린다. 결국 중증 환자가 갈 곳이 없어 응급실을 전전하는 현상은 이러한 기형적인 법적 환경이 초래한 필연적 결과다.

시민사회는 의료사고 특례법이 ‘의사 면죄부’가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하지만 법제이사로서 단언컨대 형사 처벌만으로는 환자의 눈물을 닦아줄 수 없다. 수년이 걸리는 법정 공방 끝에 얻어낸 처벌 판결은 환자에게 실질적인 위로가 되지 못한다. 우리가 제안하는 특례법의 핵심은 신속하고 확실한 보상 체계다. 첫째, 모든 의료진의 책임보험 가입을 의무화해 사고 발생 시 즉각적인 보상이 이뤄지는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둘째, 분만이나 소아 진료 등 불가항력적인 사고에 대해서는 국가가 100% 보상하는 ‘국가 책임 보상제’를 전면 확대해야 한다. 셋째, ‘사과 고지법(Apology Law)’을 도입해야 한다. 미국 미시간대 병원은 사고 시 즉각 사과하고 합의하는 모델을 통해 소송 건수를 60%나 줄였다. 사과가 법정 증거로 채택되지 않게 보호하는 장치는 의사가 입을 열게 하고, 환자가 마음을 닫지 않게 하는 인간적인 법적 장치다.

의료사고 특례법은 선배 의사들을 보호하기 위한 성역이 아니다. 젊은 의사들이 사법 리스크의 공포 없이 메스를 잡을 수 있게 하는 ‘생존권’의 문제다. 젊은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기피하는 근본 원인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의료 개혁도 사상누각(砂上樓閣)에 불과하다. 정부와 국회는 특례법을 의사들을 향한 시혜적 조치로 봐선 안 된다. 의료진이 소신껏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책무다. 의료계 역시 특례법이 환자의 권익을 두텁게 보호하는 장치를 촘촘히 설계할 것임을 약속한다. 우리가 먼저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할 때, 국민은 비로소 의료계의 진심을 신뢰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