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반도체 호황에 안주해서도 안 되고, ‘AI 올인’ 전략에만 매달려서도 안 된다. 경제 구조 개혁을 실행할 최적의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한국 경제는 수출 주도 전략과 내수 확대를 병행하며 압축 성장을 이뤄냈다. 국내총생산(GDP)의 40% 가까이를 제조업(25~28%)과 건설업(5~8%)이 차지하며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작동해 왔다. 하지만 두 산업 모두 국내에 갇힌 채 성장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일부 수출 대기업을 제외하면 제조업은 낙수 효과 약화로 중소 협력 생태계의 일감이 줄어들고 있고, 건설업은 포화된 내수 시장에 묶여 있다.
저성장 국면에서 내수 소비 진작을 비롯한 수요 확대에만 의존해서는 근본적 해법을 찾기 어렵다. 해법은 우물 안에서 소모적 경쟁을 벌일 것이 아니라, 시장 자체를 바깥으로 확장하는 데 있다. 과거 중동 진출이 국가적 돌파구였듯 공급의 양대 축인 제조업과 건설업을 결합해 세계 곳곳에서 신도시 개발 사업을 전략적 국책 프로젝트로 추진할 수 있다. 산업·주거·인프라를 융합한 ‘한국형 신도시 모델’을 패키지로 묶어 국제 무대에 전개하는 것이다.
제조·건설을 결합한 국제 종합개발사업은 국내 산업 생태계의 질적 전환을 동시에 촉진한다. 해외 신도시 개발 패키지를 통해 제조·건설이 해외로 확장되면 이에 연동해 고부가가치 생산형 서비스 수요가 확대된다. 산업 구조의 균형 회복과 생산성 제고라는 두 과제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연구·개발(R&D), 설계·엔지니어링, 금융, 지식재산(IP), 운영, 디지털 솔루션 등 고부가가치 생산자 서비스가 동반 성장하면서 지금까지 내수에 묶여 있던 서비스업도 수출형·고부가가치 구조로 재편될 수 있다. 단순한 외형 확대가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경제 전반의 생산성이 구조적으로 향상되는 선순환이 가능해진다. 또 신도시 진출 지역을 ‘제2의 내수 시장’으로 육성하면 국내 영세 생활형 서비스업과 자영업자들도 새로운 시장을 얻어 숨통이 트인다.
지금은 이런 전환을 실행할 드문 기회의 시기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각국의 K산업 파트너십 수요는 확대되고 있고, 한국 대기업의 해외 투자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 한류 확산까지 더해지며 한국형 도시·산업 모델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국내에 과밀하게 쌓인 공급 역량을 해외로 재배치해야 할 전략적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진정한 제조 강국이 될 수 있는지 여부는 생산 공정을 국내에 유지하느냐(서플라이 체인)가 아니라, 고부가가치 지식 서비스가 결합한 가치 사슬(밸류 체인)의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에 달려 있다. 즉 ‘얼마나 많이 만들고 파느냐가 아니라 밸류 체인을 어디까지 장악하느냐’에 있다.
압축 성장의 성공 신화는 과거의 유산이다. 앞으로의 성장은 국내 안에서의 재분배가 아니라, 해외로 나아가 새로운 내수 시장을 창출하는 데 달렸다. K신도시 패키지 수출은 단순한 건설업·제조업 프로젝트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국가 성장 모델을 ‘내수 과밀형’에서 ‘시장 확장형’으로 전환하는 전략적 선택이다. 동시에 K자형 양극화 성장을 완화할 수 있는 동반 성장 플랫폼이자, 과밀한 내수 생태계의 구조적 탈출구다. ‘모두의 성장’을 정책 기조로 내건 현 정부에 가장 부합하는 실행 전략도 바로 여기에 있다. 구호가 아니라 시장을 넓히는 방식으로 성장을 재설계해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 첫걸음을 내디뎌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