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에는 3월에 봄을 시샘하는 눈이 내렸다. 겨울은 지나갔지만 산하에는 아직 겨울의 잔상이 남아 있다. 다행히 지난겨울은 크게 춥지 않았다. 우리는 비교적 무난하게 겨울을 넘겼다. 그래서인지 연말에 찾아올 다음 겨울도 그 정도로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든다. 그러나 세계 정세는 우리의 이런 소박한 기대를 쉽게 허락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세계 에너지 시장에 큰 충격을 줬다. 천연가스 가격은 급등했고 유럽은 심각한 에너지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시장은 어느 정도 충격을 흡수했고, 우리에게는 기억이 희미해진 사건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과의 전쟁을 시작하면서 세계 에너지 시장은 다시 거대한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됐다.
중동 지역의 분쟁은 여전히 세계 에너지 시장의 핵심 변수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에너지 물류의 전략적 요충지다. 이 좁은 해협을 통해 세계 원유의 상당량이 이동하고 카타르가 수출하는 액화천연가스(LNG) 대부분도 이 길을 지나간다. 이곳의 항행이 위협받는 순간 세계 경제는 곧바로 충격을 받는다. 실제로 전쟁이 시작된 첫 주에 국제 유가는 배럴당 120달러까지 상승했다. 이후에 다소 가격이 떨어지긴 했어도 90~100달러 안팎에서 불안정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시장은 이미 지정학적 위험을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이번 위기가 단기간에 끝날 것이라고 낙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전쟁은 언제나 예상과 다르게 전개된다. 미국은 조기 종전을 기대하고 있지만, 이란의 대응 강도와 전략을 고려하면 장기전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피할 수 없을 것 같던 일은 일어나지 않고,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다(The inevitable never happens, the unexpected always does)”고 말했다. 국제 정치와 에너지 시장만큼 이 말이 자주 맞아떨어지는 분야도 드물다.
이번 사태 역시 마찬가지다.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이 지속되고 에너지 생산 설비 피해가 누적된다면 석유와 천연가스 공급은 상당 기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에너지 산업은 생산과 물류 복구에 긴 시간이 필요한 산업이다. 설령 전쟁이 조기에 끝난다 하더라도 공급망이 정상으로 돌아오기까지는 몇 개월이 걸린다. 그리고 그 시점은 겨울과 겹칠 가능성이 높다. 겨울이 가까워지면 세계 각국은 천연가스 비축을 위해 수요를 급격히 늘린다. 계절적 수요가 집중되는 시기다. 이미 불안해진 공급망 위에 이런 수요가 겹친다면 에너지 가격은 다시 한번 크게 요동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세계적으로 아직은 석유와 천연가스를 대체할 에너지가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 신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은 진행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에너지 수요는 단기간에 줄어들지 않으며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도 광범위하다. 그래서 이번 겨울이 더욱 걱정스럽다. 전쟁, 공급망 불안, 에너지 가격 상승, 그리고 겨울. 이 네 가지가 동시에 겹친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에너지 위기를 맞이할 수도 있다. 우리가 아무 일 없이 지나온 지난 겨울이 오히려 예외였을지도 모른다. 다가올 올해 연말이 그저 평범한 겨울이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