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중 한국산업보안한림원 회장

총성 없는 기술 패권 시대를 맞아 국가 핵심 기술과 첨단 방산 기술은 대한민국의 생존을 좌우하는 명줄이 됐다. 과거 선진국을 쫓아가던 ‘패스트 팔로어’ 시절을 지나 이제 우리는 세계 기술을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가 됐다. 지킬 것이 많아진 만큼 기술 탈취 위협도 거세다. 최근 5년간 적발된 기술 유출 피해액만 23조원에 달한다.

그동안 우리의 법 제도는 오직 ‘적국(북한)’을 위한 간첩 행위만 처벌하도록 묶여 있었다. 적국이 아닌 제3국이나 해외 기업으로 우리의 피땀 어린 기술이 빠져나가도 간첩죄로 엄단할 수 없는 치명적 법적 공백이 존재했던 것이다. 다행히 지난달 말 간첩법 개정안이 본회의 문턱을 넘으며 제98조의2 ‘외국 간첩죄’가 신설됐다. 신설된 조항은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를 위하여 국가 기밀을 수집ㆍ탐지ㆍ누설ㆍ전달ㆍ중계 또는 방조하는 행위’를 명시적 처벌 대상으로 삼았다. 이로써 외국에 의한 기술 탈취를 명백한 국가안보 위협 범죄로 정의하고, 무겁게 단죄할 수 있는 튼튼한 제도적 방패가 마련됐다. 늦었지만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법 개정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일 뿐이다. 제도가 실효성을 거두려면 치밀하고 시스템적인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현재 국가보안법 위반 등 안보 관련 범죄를 수사하던 국가정보원의 수사권이 폐지되면서 일각에서는 국가안보 수사의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존재한다. 산업스파이 활동(Industrial Espionage) 역시 국가의 비밀을 탐지해 내는 스파이 범죄이며, 이에 대응하는 것은 정보기관의 본연적 임무인 방첩의 일환이다. 세계 주요 정보기관들이 산업스파이 대응을 ‘경제방첩(Economic Counterintelligence)’이라는 중차대한 임무로 다루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적발된 산업 스파이를 사법 처리하는 궁극적인 수사는 경찰이 전담하더라도, 음지에서 암약하는 간첩과 산업 스파이를 선제적으로 색출하는 데는 정보기관의 치밀한 첩보 수집 활동이 절대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오랜 시간 축적된 방첩 노하우와 광범위한 해외 정보망을 갖춘 국가정보원의 정보 역량이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방첩의 대상이 북한에서 모든 외국 및 외국의 단체로까지 확대되었으니 국정원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고 할 수 있다. 국정원이 방첩 첩보망을 가동해 얼마나 선제적으로 첩보를 입수 및 조사하고 경찰과 긴밀하게 공조하느냐에 이번 개정안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법 통과 과정에서 국정원이 보여준 적극적인 역할은 매우 고무적이다. 이종석 국가정보원장은 과거의 진영 논리나 세간의 엇갈린 시선을 뒤로하고,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부터 관련 법령 정비의 시급성을 강력히 천명했다. 나아가 비공식 국회 정보위에도 간첩법 개정의 필요성을 수시로 보고하고, 법안 통과를 위해 조직의 역량을 집중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 안보와 국익 수호 앞에는 어떠한 이념이나 정치적 셈법도 우선할 수 없음을 보여준 의미 있는 행보였다.

외국 간첩죄 신설은 대한민국 기업의 피땀 어린 성과를 지키고 경제 안보를 수호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새롭게 마련된 법적 기반 위에서 국정원과 경찰의 빈틈없는 공조 체계가 신속하게 정착돼야 한다. 대한민국의 핵심 기술을 노리는 검은 손길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기를 강력히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