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22회 중국국제반도체박람회에서 한 관람객이 인공지능 모델이 나온 화면을 보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성원용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명예교수

올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기업의 영업이익은 합쳐서 20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글로벌 AI 대장주인 엔비디아의 연간 이익 규모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경이로운 수준이다. 환호하고 있는 사이 메모리 산업은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고 중국과 미국은 거센 추격을 하고 있다. 지금은 기회와 함께 위기가 공존하는 시점이다.

우선 기회를 보자. 국내 반도체 산업은 범용 메모리의 양산에 의존해 왔기 때문에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경기 순환형 산업이었다. 그러나 GPU(그래픽처리장치) 등 AI가속기에 필수적인 HBM(고대역폭 메모리)의 수요 증가는 이 산업 자체를 주문형 제품 생산으로 바꾸고 있다. 대용량 AI 모델의 실행에는 GPU와 메모리 사이에 끊임없는 데이터 이동이 필요하며, HBM을 이용하면 AI 시스템의 처리 능력과 전력효율이 크게 개선된다. 전쟁에서 화력(GPU) 못지않게 보급과 수송능력(HBM)이 중요한 것과 비슷한 이치다.

하지만 위험 요인이 만만치 않다. 첫 번째 도전은 중국의 반도체 산업 육성이다. 중국의 반도체 기업은 메모리 생산 경험이 적고 또 첨단 노광장비의 수입 제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고 동시에 엄청난 규모의 인력을 키우고 있다. 중국의 대학을 방문하면 엄청난 시설과 교수, 대학원생 숫자에 놀란다. 수백명의 대학원생이 독서실처럼 빽빽한 공간에서 대형 모니터를 보며 집적회로를 설계하는 장면을 보면 숨이 막힌다.

두 번째 도전은 완전히 새로운 구조의 AI 시스템 설계를 시도하는 미국의 혁신 기업들이다. 최근 엔비디아는 ‘그록’이라는 AI 가속회사에 약 29조원이라는 거금을 투자해 사실상 인수했다. 오픈AI도 ‘세레브라스’라는 AI 가속 회사와 대형 구매 계약을 맺었다. 세레브라스는 지름 30cm 정도의 반도체 웨이퍼 전체에 연산소자와 메모리를 통합 구현해 데이터 이동의 병목을 없앴다. 소위 인메모리(in-memory) 컴퓨팅 구조라 불리는 이 두 회사의 차세대 AI가속기는 HBM을 외부에 따로 붙일 필요가 없다. 국내 반도체 기업도 인메모리 컴퓨팅 구조를 연구하고 있기는 있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 개발에는 많은 인력과 함께 높은 순발력이 필요한데,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는 중국과 미국에 열세다.

차세대 반도체 산업의 경쟁은 결국 국가 대항 속도전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정책 대응은 냉엄한 현실을 못 보고 있다. 공장 입지를 둘러싼 정치적 압박, 불확실한 전력 수급 정책, 느린 인허가 구조는 모두 기업의 실행력을 훼손하고 있다. 우리가 시간을 끌면 10년 후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중심이 중국의 허페이시나 미국의 뉴욕주가 될지도 모른다. 특히 인력 정책은 자해에 가깝다. 컨베이어 벨트에 종속되어 일하는 저임 노동자와 이미 연봉 2억원 수준인 핵심 연구직 직원에게 획일적 근로 규제를 가하고 있다.

지금은 메모리 산업의 중대한 전환기다. 이 기회를 살린다면 우리나라의 반도체 기업은 높은 실적 변동의 굴레를 벗어나 엔비디아나 TSMC와 같은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중국과 미국 경쟁 기업의 추월을 손 놓고 바라만 본다면 특정 기업의 실패를 넘어 우리나라 경제의 엔진이 꺼지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은 메모리 호황에 취할 때가 아니다. 오히려 메모리 초격차가 시험을 받는 시점이다. 기업은 인력 양성과 기술개발에 더 과감한 투자를 하고, 정부는 산업·인력·교육정책을 대대적으로 혁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