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현재 미·중 해양 패권 경쟁이 빚어내는 거대한 파고 한복판에 서 있다. 미국과는 군사동맹을 공고히 다지는 동시에 중국과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복원해 국익을 챙겨야 하는 외교적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미·중의 군비 경쟁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패권을 둘러싼 양국의 대립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특히 남중국해와 동중국해는 양국의 핵심 이익이 충돌하는 화약고와 같다. 미국은 최근 안보전략보고서(NSS)를 통해 대만과 오키나와, 필리핀을 잇는 이른바 중국의 ‘제1도련선’을 방어의 핵심 목표로 설정하며 대중국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해외 주둔 미군 기지를 요새화하고 아시아 동맹국에 방위비 분담과 방어 부담의 전환을 요구하는 미국의 동맹 정책은 큰 부담이다.
미국에 맞서는 중국의 행보 역시 위협적이다. 중국은 함정 수 기준으로 이미 세계 1위인데 핵 추진 항공모함 건조와 핵무기 확충을 통해 대양 해군으로의 도약을 서두르고 있다. 수세적 방어에 머물지 않고 미군의 접근을 선제적으로 차단해 해양 패권을 장악하겠다는 도전적 전략이다. 중국 해군은 대만 해협 및 남중국해에서의 작전 능력을 높이는 중이다. 2035년까지 미국에 비견되는 군사력을 갖추겠다는 중국의 로드맵은 역내 긴장을 고조시키는 주요 요인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미·중 관계가 파국이 아닌 ‘현상 유지(Status Quo)’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양국 모두 갈등의 장기화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특히 오는 4월로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과 시진핑 주석의 방미 초청을 통한 셔틀 외교 재개는 국제 전략 환경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 미·중 관계가 ‘적대적 공생 관계’로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전략적 소통으로 상황 악화를 막는 데 함께 노력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격랑의 틈바구니에서 한국의 정책 선택은 정교해져야 한다. 중국은 한국을 한·미·일 공조의 ‘느슨한 고리’로 만들려 하고, 미국은 한국을 대중 견제의 ‘최전선 연합체’로 활용하려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도전을 지혜롭게 극복해야 한다. 최근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한한령(限韓令) 완화와 서해 잠정조치수역 이슈 등을 논의하기로 한 것은 고무적이다. 무엇보다 ‘한반도 비핵화’가 양국의 공동 이익임을 대외적으로 재확인한 것은 상당한 성과다.
한·미 관계에서는 ‘동맹의 현대화’라는 과제를 풀어야 한다. 한·미 간 인식의 차이를 줄이는 것이 우선 과제다. 한국군이 연합 방위에서 더 큰 역할을 맡고 안보를 주도적으로 책임지는 방향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국방비를 증액해 안보를 스스로 책임지는 일 또한 긍정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업이다. 그러나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와 대중 견제 강화 방안에 대해서는 동맹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국익’ 관점에서 냉정하게 접근해야 한다.
미·중 경쟁 시대에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강력한 국방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대한민국이 미·중 사이의 ‘양자택일’이라는 낡은 프레임에서 벗어날 만큼 전략적 가치를 지닐 때 비로소 한·미 동맹의 결속력도 강화되고 대중국 협상력도 높아질 수 있다. 2026년 한반도는 미·중 경쟁의 종속변수가 아니라, 스스로 평화와 번영을 일구어가는 주도적 행위자가 돼야 할 것이다. 강력한 국방력만이 격랑의 시대에 살아남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