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일본은 고령 사회에 진입한 지 12년 만인 2006년, 세계 최초로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초고령 사회에 가장 먼저 진입한 일본은 지금도 OECD 기준 세계 최고령 국가다.

한국은 고령화 사회 진입 7년 만인 2024년 초고령 사회에 도달하면서 일본보다 빠른 속도로 뒤를 잇고 있다. 이 추세라면 2045년 고령 인구가 전체 인구의 37.3%에 이르러 일본을 추월한 세계 최고령 국가가 될 전망이다. 반면 합계출산율은 2024년 기준 한국 0.75명, 일본 1.15명으로 한국이 먼저 심각한 저출생 국면에 접어들었다. 양국은 생산 가능 인구의 감소와 돌봄·의료비 폭증, 재정 압박이라는 동일한 위기를 겪고 있다.

한국에게는 일본이 ‘고령화의 미래’, 일본에겐 한국이 ‘저출생의 미래’라는 뜻이다. 두 나라의 ‘시간차’는 협력의 자산으로, 양국이 머리를 맞댄다면 더 좋은 해법을 만들 수 있다. 일본은 20여 년 앞서 초고령 사회를 경험하며 축적한 노하우, 한국은 저출생 대응과 디지털 역량에 있어 협력의 물꼬를 틀 수 있다.

특히 흔히 위기로만 규정되는 고령화에 있어, 양국의 협력은 새로운 기술과 산업, 돌봄 체계, 노동시장 혁신을 촉진하면서 국가 성장의 새 동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 두 나라가 서로의 경험과 강점을 나누고 보완한다면 인구 위기가 아닌 국가 성장의 동력으로 만들 수 있다.

우선, 고령자의 안전과 생활 편의를 높이는 돌봄 로봇, 낙상 예방 기술, 스마트 홈 서비스는 양국이 함께 연구·개발하고 공동으로 해외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분야다. 양국이 에이지테크(Age-Tech)에 대한 공동 연구부터 안전·기술 표준 등을 상호 인정하는 전 주기적 협력 체계를 구축하면 글로벌 시장 진출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또 일본의 로봇 기술과 커뮤니티 케어 경험, 한국의 AI·센서·디지털 플랫폼 역량을 결합한다면 세계 최고 수준의 실버산업 생태계 구축도 가능하다.

돌봄과 치매 문제에서도 두 나라는 장기 요양 보험의 재정 지속성, 치매 환자 급증, 돌봄 인력 부족이라는 공통의 과제를 안고 있다. 재정 구조와 본인 부담 체계에 대한 비교를 통해 재원 확보와 지출 효율화를 위한 공동 개선 방안을 찾는 것은 물론, 치매 고령자의 안전한 자산 관리를 위한 양국 금융 기업 간 세미나 등 협업도 확대될 필요가 있다. 또 커뮤니티케어 모델을 공유하고 외국인 돌봄 인력을 체계적으로 도입·활용한다면 양국 모두에 도움이 될 것이다.

노동시장 역시 핵심 과제다. 일본은 정년 후 재고용과 정년 연장, 임금 체계 조정 등에서 축적된 경험을 가지고 있어 유사한 논의를 진행하는 한국에 중요한 참고가 될 수 있다. 여기에 한국이 강점을 가진 AI 기반 직무 재설계, 디지털 재훈련 플랫폼, 일·가정 양립 정책을 더한다면 생산성과 지속 가능성 제고에 기여할 것이다.

지역 소멸 문제에 있어서도, 컴팩트 시티 전략이나 고령층 이동성 확보, 학교·병원·대중교통 재구조화 등에 대한 양국의 우수 사례를 공유해 각국에 맞는 해법 모색에 활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한일 양국의 협력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제도적 협력을 넘어, 일·가정 양립의 우수 기업 모델을 공유하는 등 민간의 활발한 협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이다.

고령화와 저출생은 한 나라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다. 가장 먼저 늙은 일본과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한국이 ‘축적된 경험’과 ‘정책적 실험’들을 교차 적용하며 결합한다면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고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