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호정 연세대 인공지능융합대학 학장·SW중심대학사업단장

오늘날 인류는 초거대 인공지능(AI)이 사회 전반의 근간을 뒤흔드는 문명적 전환점에 서 있다. 단순히 기계의 지능이 높아지는 기술적 진보를 넘어, 사고 방식과 사회적 상호작용, 심지어 국가의 존립 기반까지 바꿀 수 있는 패러다임의 변화다. 이렇게 격변하는 환경에서 국가의 생존과 미래 경쟁력은 첨단 AI 기술을 이해하고 인간적 가치와 결합할 수 있는 ‘고급 AI 융합인재’를 어떻게 양성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제 대학은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핵심 기지가 돼야 한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융합인재 양성은 전공 간의 경계를 넘어서는 교육 체계 혁신에서 시작한다. AI는 이제 특정 학문 분야의 전유물이 아니다. 인문, 자연, 사회, 경영, 공학, 의학, 예체능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고유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고 도구가 돼야 한다. 대학은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AI를 실질적 도구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정교한 교육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각 학문의 정체성 위에 AI라는 엔진을 탑재할 수 있는 전공 특화형 AI 교육 체계를 수립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대학은 이제 단순한 AI 기초 교육을 넘어선 ‘전공 특화형 AI 융합 교육 체계’를 정립해야 한다. 그 핵심은 선택과 집중, 그리고 전공 주도성에 있다. 모든 학생에게 일방적인 기초 교육을 시행하기보다 각 전공별로 역량 있는 학생을 선발해 AI 핵심 기술과 전공별 특화 교육을 밀도 있게 제공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AI 전문 학과가 기술적 근간을 지원하고, 개별 전공에서 ‘AI비즈니스전략’, ‘약학빅데이타분석’, ‘AI기반임상심리’ 같은 융합 과목을 자체 개발해 교육의 실효성을 극대화하는 구조다. 이런 교육 과정 개혁을 통해 AI 융합을 주도할 수 있는 전공 특화된 미래 핵심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다.

연세대가 2022년부터 도입한 ‘AI융합심화전공’은 이러한 혁신적 교육 체계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선도적 모델이다. 인공지능융합대학이 제공하는 AI 핵심 커리큘럼을 기반으로, 18개 단과대학 50여 개 전공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거두고 있는 성과는 이 체계의 실효성을 잘 보여준다. 실제로 이 모델은 학내 모든 전공으로 확산되고 있고, 각 전공에서는 전공 특화 AI 교과목 개발 노력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러한 대학의 혁신이 국가적 결실로 이어지려면 정부의 전략적 지원이 필수적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기획평가원이 추진하는 SW중심대학사업이 좋은 예다. 국가 지원이 전공 특화 교과 개발과 첨단 AI 실습 환경 조성 등에 투입될 때, 대학은 비로소 국가 전략 자산을 키우는 거점이 된다. 이제 대학은 이러한 검증된 체계를 참고해 고유 학문의 강점을 극대화하는 AI 융합교육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개별 대학의 혁신을 넘어 국가의 미래 지식 생태계를 재편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알고리즘 기술자를 넘어 세상을 이롭게 할 통찰력을 지닌 창의적 AI 융합인재다. 학문과 산업의 경계를 허물고 AI 미래 선도국으로 도약하려면 이들이 역량을 펼칠 탄탄한 토양을 조성해야 한다. 융합인재 양성은 이제 개별 기관의 선택이 아닌, 국가 운명을 걸고 이루어야 할 시대적 사명이다. 대학이 뿌리는 변화의 씨앗이 대한민국을 AI 강국으로 이끄는 거대한 숲이 되도록 사회 구성원 모두가 동참해야 한다. 기술을 넘어 인간의 시대를 준비하는 오늘의 노력이 다음 세대에 줄 가장 위대한 유산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