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발표된 노벨상은 문학과 경제 두 부문에서 한반도가 핵심 주제였다. 두 부문은 외견상 전혀 연결고리가 없는 것 같아 보였지만 내용이 서로 통하는 인과관계가 있었다. 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은 한국의 건국 과정에서 일어난 ‘제주 4·3 사건’을 다룬 작가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이다. 스웨덴 한림원은 작가의 특정 작품이 아닌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시적 산문”을 높이 평가해 선정했다고 한다. 물론 광주 5·18을 다룬 한강의 ‘소년이 온다’도 이 범주에 속한다.
‘제주 4·3 사건’은 남한이 5·10 총선거를 통해 국가의 틀(헌법 제정)을 구축하려는 노력을 북한이 방해하려고 일으킨 비극적 사건이다. 당시 김일성 지령을 받은 남로당이 제헌 국회의원 선거(5·10 총선거) 방해 공작을 이행하자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과 남로당원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는 건국 정국에서 발생한 민족의 큰 상처이자 반드시 치유해야 할 우리의 과제다. 건국 정국에서 우리가 갈구하고 정립하고자 했던 제도적 틀은 오늘의 관점에서 포용적 제도(inclusive institution)였다. 반면 김일성과 남로당이 고집한 틀은 착취적 제도(extractive institution)였다.
2024년 노벨 경제학상은 한반도 문제를 비중 있게 다룬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를 저술한 대런 애스모글루 외 2인이 수상했다. 왜 어떤 나라는 부유하고 어떤 나라는 가난한가? 이 책의 핵심은 그 차이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제도’라는 것이다. 그들은 한 국가의 번영과 빈곤은 지리적 여건, 기후, 문화, 통치자의 무지가 아니라 ‘정치 및 경제 제도’에 좌우된다며, 제도를 포용적 제도와 착취적 제도로 나눴다. 포용적 제도는 선순환하고 착취적 제도는 악순환하는데, 극명한 사례로 남한과 북한을 대비해 분석했다.
남한은 사유재산권을 인정하고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포용적 제도’를 선택해 세계적인 경제 대국이 됐다. 반면 북한은 소수 권력층이 모든 자원을 통제하는 ‘착취적 제도’를 유지함으로써 경제적 실패와 빈곤의 늪을 헤매고 있다는 것이다. 즉 남북이 동일한 민족·언어·문화·지리를 공유하고 있음에도 남북의 극단적 차이는 단지 ‘제도적 차이’로 인해 생긴 결과라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올바를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유효하다.
2024년 작가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에 우리는 환호하고 축하했다. 개인의 영광이자 나라의 경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남북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 노벨 경제학상 수상작에는 별로 주목하지 않았다. 이는 우리가 제도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대응·진압 과정에서 생긴 불상사에도 제주 4·3 사건 대응이 올바른 국가의 틀을 정립하는 데 기여한 점만큼은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7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때 만든 국가의 틀이 오늘의 자유·민주·인권·평화의 핵심 토대가 됐기 때문이다.
제주 4·3으로 포용적 제도의 토대를 구축하는 기반이 됐다면, 그때 구축된 제도적 토대가 선진국 도약의 발판이 됐다. 2024년 노벨 문학상이 포용적 제도의 출발점이라면 경제학상은 포용적 제도의 결과물이다. 따라서 제주 4·3 사건의 오역(誤譯)은 경계해야 한다. 그래야 올바른 역사 정체성이 정립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