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연 경상국립대 생명과학부 교수

지난 4일 ‘GMO(유전자변형생물체) 규제의 본산’이라 불리며 가장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던 유럽연합(EU)이 마침내 유전자 교정 작물(NGT)에 대한 규제 완화안에 잠정 합의했다. 그동안 유전자 관련 기술에 보수적 태도를 취해 온 유럽이 변했다는 사실은 이제 세계가 GMO 논란을 넘어 유전자 교정 기술을 중심으로 한 그린 바이오 혁신에 진입했음을 뜻한다.

합의의 핵심은 명확하다. 외래 유전자를 삽입하지 않고 자연 변이한 작물이나 전통 육종과 구별되지 않는 수준의 유전자 교정 작물(NGT 1등급)은 더 이상 위험 GMO로 취급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NGT 1등급 작물은 복잡한 안전성 검토, ‘GMO’ 표시 의무에서 면제된다. 종자 단계에서만 표기하면 되고, 소비자는 마트에서 일반 농산물과 똑같이 그 농산물을 만난다. 과학적으로 안전하다면 규제도 그에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이 빗장을 푼 이유는 과학 존중만이 아니다. 기후 위기와 식량 안보 위협 속에서 농업 경쟁력을 지키려는 생존 전략이다. 덴마크 야콥 옌센 농식품장관의 말처럼,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것을 생산해야 하는 시대”다. 미국·일본·호주·남미에 이어 유럽까지 규제 혁신에 합류하며, 유전자 교정 작물 상용화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됐다.

한국은 어떤가. 유럽의 합의가 있기 이틀 전인 2일 우리 국회는 ‘GMO 완전 표시제(식품위생법 개정안)’를 통과시켰다. 소비자 알 권리와 식품 선택권을 보장하려는 우리 사회의 투명성이 진일보했음을 보여준다. 이 시점에서 결단이 필요하다. GMO 성분 표시를 합의한 만큼 역설적으로 유전자 교정 작물(GEO)과 전통적인 GMO를 구별해야 할 필요성은 더 커졌다.

현행법대로라면 외래 유전자가 전혀 없는 안전한 유전자 교정 작물조차 ‘GMO’ 라벨을 달아야 한다. 이는 소비자에게 첨단 육종 기술과 외래 유전자 변형 기술을 혼동하게 해 불필요한 공포를 조장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20년 전에 만든 낡은 규제에 묶여 규제의 섬을 자처한다. 세계는 유전자 교정과 유전자 변형을 구분해 합리적인 규제 트랙을 만들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새로운 기술이니 위험할 수 있다”는 ‘유죄 추정’의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피해는 국내 산업계와 연구자들의 몫이다. 우리 연구진이 세계 최초의 혁신 기술을 개발해도, 낡은 규제에 막혀 국내에서는 상용화가 불가능하다. 결국 기술은 해외 기업에 헐값에 넘어가고, 유망한 연구자와 스타트업은 해외로 떠나야만 한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유럽이 이번 규제 완화 논의에서 ‘지식재산권’과 ‘특허’ 문제를 함께 다루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NGT 기술을 단순한 농업 도구가 아니라, 미래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지식 산업으로 본다는 뜻이다. 우리가 규제를 둘러싼 소모적 논쟁을 반복하는 사이, 선진국들은 기술 표준을 만들고 특허를 선점하며 시장의 판을 짜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 국회와 정부가 결단해야 한다. 유럽마저 변화를 선택했고, 국내에서는 완전 표시제로 투명성의 기반을 닦았다. 남은 퍼즐은 LMO법 개정뿐이다. LMO법 개정은 특정 기업의 민원을 들어주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식량 주권을 지키며, 미래 바이오 산업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한 국가적 과제다. 유럽발(發) 규제 혁신의 파도와 국내의 제도적 투명성이 만나는 지금이 바로 골든타임이다. 현명하고 신속한 응답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