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창훈 한국조폐공사 사장

현대 사회는 문화 경쟁 시대라 할 수 있다. 세계 주화 시장에도 각국 문화를 상징하는 예술형 주화가 있다. 국가 상징물을 주제로 귀금속으로 발행하는 국가대표 주화다. 법정 화폐 지위와 예술적 가치, 국가 상징성을 함께 지닌다. 미국은 독수리, 캐나다는 단풍잎, 중국은 판다 등, 국명을 언급하지 않아도 해당 국가를 상기시키는 주제를 쓴다. 이런 주화는 국가 이미지를 홍보하는 동시에 연간 3조원 정도의 시장을 형성한다.

프랑스가 예술형 주화를 내년 1분기에 출시한다고 발표했다. 문화 강국 자부심을 예술형 주화에 담아 국제적 위상을 확대하고, 국가 산업을 성장시키겠다는 포부다. 그동안 잠재력은 컸지만 발행은 미뤄왔던 프랑스가 움직인 것이다. 구체적 디자인은 아직 미공개지만 1oz(31.1g)부터 1/10oz(3.1g)까지 총 4가지 크기의 금화를 출시하면서 기존 주요국과 마찬가지로 발행량에 제한을 두지 않는 등 공격적인 시장 진입을 선언했다. 또 구매한 금화만큼을 실물이 아닌 계좌에 보관하는 디지털 형식으로도 발행하겠다는 결정은 한국의 ‘KRX금시장’을 떠올리게 한다.

한국도 프랑스의 발행 시기에 맞춰 예술형 주화를 출시하면 어떨까? 세계 주화 시장에서 좋은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먼저 문화적인 측면에서 프랑스가 강국이라면, 한국은 전통뿐 아니라 현대까지 아우르는 문화 강국이다. 우리 역시 다양한 전통과 긴 역사를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현대에서는 K팝으로 대표된 한국 콘텐츠가 이제는 드라마·음식·패션·게임·관광까지 그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특히 최근 ‘K팝 데몬 헌터스’ 등 전통을 재해석한 콘텐츠들이 세계로 퍼지면서, 한국 문화는 이제 트렌드를 좇아가는 게 아니라 개척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서울 서대문구 주한프랑스대사관저에서 열렸던 '파리 올림픽 공식 기념주화 실물 공개 행사'. /박상훈 기자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한국은 반도체·조선·자동차 등 전략 업종을 주력 산업으로 하는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다. 또 연간 약 2000만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을 방문하고, 이들은 화장품·미용 등 K뷰티에 열광한다.

마지막으로 세공 기술 측면이다. 경주 APEC 정상회의 때 방한한 트럼프 대통령이 극찬한 ‘무궁화 대훈장’을 만드는 최고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 이런 기술력이라면 복잡한 도안과 고난도 마감을 요구하는 예술형 주화 역시 세계 최고 수준으로 제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 가지 경쟁력을 바탕으로 예술형 주화를 만들게 되면, 수출을 통한 국가 브랜드 가치의 제고와 함께 주화의 앞뒤에 들어가는 한국의 국가 상징물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고 국민 통합에 기여할 것이다.

이제 우리도 프랑스와 예술형 주화 분야에서 진검승부를 펼칠 자신감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다만, 주화의 소재와 다양한 크기, 제조 방법, 국내외 유통 방법 등에 있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프랑스 수준의 규제 여건이 필요하다. 새해에는 가치 보장과 상징성을 지닌 예술형 주화가 한국의 문화와 정체성을 세계에 알리길 바라며, 세계 최강 프랑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