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립대학에서 교수 노조가 잇달아 설립되고 있다. 오랫동안 ‘정신 노동자’로 여겨져 온 교수들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받고자 한 변화로, 대학 사회의 새로운 흐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학령인구 감소와 정부의 경쟁적 재정 지원이 맞물린 구조적 위기 속에서, 교수 노조가 본래 취지를 벗어나 임금 교섭 중심의 이익집단으로 변질된다면 사립대학 운영과 교육의 질은 더욱 흔들릴 수 있다. 노조와 대학이 상생할 길은 없을까.
우리의 ‘사립학교법’은 일본법을 참조해 1963년에 제정된 이후, 반세기 넘게 사립대학 운영 전반을 정부 통제 아래 두어 왔다. 일본이 1971년 개정을 통해 수익 사업만 별도 회계로 분리하고 학교 회계를 통합한 반면, 한국은 여전히 법인 회계와 교비 회계를 분리한 ‘이원화된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법인과 대학이 각각의 인격체처럼 운영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법인 이사장 및 임원의 임명권이 교육부에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사립대학협회 관계자는 “사립대학의 이사장을 정부가 임명하는 것은 구글의 CEO와 이사 모두를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기형적인 거버넌스 구조 속에서 한국의 사립대학은 자율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교수 노조의 등장은 또 다른 갈등을 낳고 있다. 노조의 임금 상승 요구가 인건비 비중이 큰 대학 재정 악화의 또 다른 변수로 됐기 때문이다. 사립대학이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위기를 극복하려면 장기적 자산 축적이 필요한데, 지금의 제도는 이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특히 대학의 장기적 재정 구조를 고려하지 않고 현시점의 재무 상태만으로 노조의 임금 인상 요구를 수용한 대법원 판결은 대학의 교육 연구의 질적 약화를 초래하고 있다. 학교법인이 대학 발전을 위해 긴 안목으로 재정을 설계할 기회를 빼앗아 버린 셈이다.
일본은 전후 민주화의 흐름 속에서 교직원 노조가 일찍 결성됐고, 그중 노사 협력의 모범 사례로 주목받은 대학이 바로 ‘교토가쿠엔(京都学園)’이다. 2009년 일본 사립학교진흥공제사업단 출신의 니시이 야스히코 이사장이 재정난과 노사 갈등으로 마비된 대학의 재건을 맡았다. 그는 문제의 원인을 ‘노조의 반발’이 아니라 ‘대학 자율의 부재’에서 찾았다. 니시이는 재무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하며, 대대적인 임금 삭감 없이는 대학의 존속이 어렵다는 현실을 수치로 제시했다. 또한 통계 자료를 근거로 다음 세대의 고용 보장을 약속하고, 단기적 이익보다 학교의 생존을 위한 용단을 내려 달라고 노조를 설득했다. 끈질긴 설득 끝에 노조 간부도 자신의 안녕보다 대학의 생존과 젊은 직원의 고용을 보장하는 제안을 받아들여 임금 삭감안을 수용했다. 이 사례는 대학 노조의 사회적 사명이 자신들의 금전적 이익 추구가 아니라 대학의 존재 이유, 즉 ‘인류의 문제 해결을 위해 공헌한다’는 본질을 지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한국의 고등교육 정책을 보면, 표면적으로는 ‘라이즈(RISE)’ 사업처럼 지자체에 권한을 위임하며 ‘자율’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그러나 사립대의 현실은 차등적 재정 지원과 반값 등록금 정책 아래 여전히 정부의 통제에 묶여 있다. 여기에 노조까지 등장하며 대학 내부의 갈등은 한층 증폭되고 있다. 지금의 상황은 마치 ‘동물원 우리 안에 갇힌 코끼리’처럼, 교수 노조와 대학이 사육사가 던져준 먹이를 두고 다투는 모습이다. 해방 이후 사립대가 경제성장과 민주화에 기여해 온 사실을 평가받지 못하는 것도 안타깝지만, 사립학교법 제도 안에서 대학과 구성원이 ‘먹이’를 두고 싸우게 된 현실이 더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