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호 한국예탁결제원 사장

‘팬덤’ 시대다. 예전과는 달리 지금의 팬들은 단순한 관객을 넘어선 역할을 한다. 팬들은 아티스트의 세계관에 열광하며 새로운 문화와 트렌드를 만드는 동반자이다. 팬덤의 영향력은 만만치 않다. 근간에는 아티스트와 팬들 간의 깊은 신뢰가 있다. 팬들이 믿고 따르는 만큼, K팝 그룹도 팬들과 더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그들의 의견을 듣고자 노력한다. K팝 그룹이 새로운 정보통신 기술(ICT)을 활용해 팬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며 참여 기회를 창출하는 이유다. 이는 기업에 대한 주주의 신뢰 회복을 위해 한국 기업이 참고할 만한 사례다.

주주는 기업의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주주총회에 참석해 기업의 실적과 경영 계획을 듣고 주주권을 행사한다. 주주총회는 기업과 주주가 소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장(場)이다. 하지만 지금의 주주총회는 주주가 기업을 직접 찾아가야 하는 방식이다. 주주는 주주총회가 열리는 현장에 참석하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특정 일자에 주주총회가 집중되고, 먼 이동 거리 등을 생각하면 주주에게는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지난 7월 상법 개정을 통해 ‘전자 주주총회’의 법적 기반을 마련한 점은 매우 뜻깊다. 전자 주주총회는 이미 약 40국이 도입해 주주총회의 보편적 방식으로 정착된 제도다. 2027년부터 국내 상장 회사가 도입할 수 있는 전자 주주총회는 주주가 공간적 제약 없이 온라인으로 기업의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도록 돕는다. 여건상 대면 주총장에 참석할 수 없는 주주도 PC, 노트북, 스마트폰 및 태블릿 등 다양한 단말기를 통해 전자 주총장에 출석해 경영진에게 질문하고, 회사의 의견을 들으며,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물론 주주총회 개최 10일 전부터 전일까지 사전 전자 투표 시스템 이용도 가능하다. 이렇듯 전자 주주총회는 주주권 행사의 편의 향상을 넘어, 주주 참여의 본질을 바꾸는 중요한 변화다.

전자 주주총회의 혜택이 주주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전자 주주총회는 기업이 주주를 단순한 투자자에서 기업의 경영 목표와 전략을 지지하는 팬으로 발전시킬 기회가 될 수 있다. 기업은 전자 주주총회를 통해 현재보다 많은 주주에게 경영 성과와 미래 비전을 알릴 수 있다. 대면 방식의 주주총회에서는 어려웠던 기업과 주주 간 소통을 강화할 수 있는 창(窓)이 마련된 것이다. 주주가 기업의 가치와 비전에 공감하고 기업을 신뢰할 때, 기업은 주주에게서 단단한 지지를 얻게 된다. 전자 주주총회는 이러한 기업과 주주 간 굳건한 관계 형성을 돕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이 전자 투표 서비스에서 쌓아온 경험과 역량을 바탕으로 편리하고 안정적인 전자 주주총회 플랫폼 구축에 힘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K팝 산업은 팬덤과 함께 눈부신 성장을 이루어왔다. 관객이 팬으로 바뀌었듯이 주주가 기업의 진정한 팬으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될 전자 주주총회의 미래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