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의준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서울대 특임교수

미국 코넬대 프랭크 로젠블랫은 1957년 ‘퍼셉트론(perceptron)’이라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념을 발표했다. 퍼셉트론은 사람의 신경세포인 ‘뉴런’을 모방한 최초의 인공 신경망 모델이었다. 입력한 정보를 종합해 맞으면 1, 틀리면 0으로 판단하는 식으로 작동한다. 기계가 스스로 데이터를 학습하고 판단할 수 있다는 로젠블랫의 주장에 언론은 “인간처럼 생각하는 기계가 곧 등장한다”고 대서특필했다. 미 해군은 퍼셉트론이 사진 속 적군과 아군을 자동으로 식별할 수 있을 것이라며 막대한 연구비를 지원했다. 눈앞에 다가온 것 같던 인공지능(AI) 시대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매사추세츠공과대(MIT) 마빈 민스키는 1969년 퍼셉트론 구조로는 아주 단순한 문제만 풀 수 있고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한다. 실망한 정부는 예산을 대폭 삭감했고, 벌 떼처럼 AI에 몰렸던 젊은 연구자 상당수는 다른 분야로 향했다. 이른바 ‘AI의 겨울’이라는 사건이다.

‘실패’ 낙인에도 AI 연구는 멈추지 않았다. AI가 인류의 미래를 바꾸리라 믿은 수많은 사람이 퍼셉트론의 한계를 보완하고 돌파구를 찾기 위해 밤을 지새웠다. 그 결과물이 바로 퍼셉트론을 층층이 쌓은 딥러닝(심층 학습)이었고, 반도체와 컴퓨팅 성능이 이를 뒷받침할 수준까지 발전해 챗GPT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오픈AI가 챗GPT를 발표한 것이 2022년이니, 로젠블랫의 꿈이 실현되는 데 무려 65년이 걸렸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과학자와 공학자가 반복되는 실패와 좌절, 예산을 낭비한다는 냉소적 시선 속에서 여기에 매달렸는지 짐작도 하기 어렵다.

AI의 역사는 과학과 공학에서 실패가 왜 중요한지 보여준다. 가설을 세우고, 이를 입증하는 것이 과학의 작동 원리지만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현실은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불어넣어 방향을 수정하는 과정이다. 돌파구가 하나 나오면 셋, 다섯 장애물이 새로 등장한다. 어렵고 도전적인 연구, 큰 혜택이 되는 연구일수록 더욱 그렇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것이 과학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과학은 실패와 가장 거리가 먼 분야이다. 연구자가 연구비 제안서에 쓴 목표를 조금이라도 달성하지 못하면, 연구비가 삭감되고 아예 연구가 중단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아무도 해보지 않은 연구를 하겠다면서 연차별로 이만큼 성과를 내겠다고 약속하고, 모든 평가는 이 약속을 기준으로 이뤄진다. 기준에 미달하면 ‘예산을 낭비한 실패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결국 이미 검증된 연구를 포장해 새로 제안하고, 연차별 목표 역시 안전하게만 제시하는 문화가 한국 연구·개발(R&D) 시스템의 기본 옵션이 됐다. 기초과학이나 공학이나 R&D 예산이 투입되는 곳 모두 비슷하다. 실패를 피하는 것이 한국 R&D의 정체성이자 고질병이다. 지금과 같다면 아무리 많은 R&D 예산을 쏟아부어 봤자 한국에서 미래를 이끌 과학, 노벨상을 받을 과학은 태어나지 않는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실패할 권리와 자유를 연구자에게 드리겠다”고 선언했다. 이런 고질병을 고쳐 보겠다는 것이다. 국민의 예산을 쓰는 일이 처음부터 실패가 목표일 수는 없다. 도전하고, 실패해도 배우고, 다시 새롭게 도전하는 것이 ‘실패할 권리와 자유’의 핵심이다. 한국도 과학 선진국처럼 실패에서 혁신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대통령과 정부가 지원을 약속했으니, 이제 그 문화를 피워내는 것은 과학자들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