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노벨 경제학상은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의 핵심 메커니즘이 기술 혁신과 창조적 파괴에 있음을 입증한 슘페터 학파의 조엘 모키어, 필리프 아기옹, 피터 하윗 교수 3명에게 돌아갔다. 이들의 연구가 시선을 끄는 이유는 저성장 늪에 빠진 한국 경제에 탈출 해법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 총재의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0여 년간 유럽과 미국의 GDP 격차가 크게 벌어진 원인 중 하나는 R&D와 벤처 투자 등 혁신에서 유럽이 크게 뒤처졌다는 점이다. 실제로 미국 경제의 성장은 스타트업과 거기서 성장한 혁신 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구글, 아마존, 메타, 테슬라와 같은 기업은 조그마한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스타트업과 혁신 기업이 미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대략 30%로 추정된다.
우리 경제의 고용과 생산에서 스타트업과 벤처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10% 안팎으로 추정된다. 1%대로 추락한 잠재성장률을 3% 이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스타트업 생태계의 규모를 지금보다 3배 이상으로 키워야 할 것이다. 연간 10조원 규모인 벤처 투자는 30조원 이상으로 확대해야 하며, 코스닥 시장의 시가총액도 현재 460조원에서 1500조원 이상으로 성장시켜야 한다.
일각에서는 벤처 투자 거품을 우려해 벤처 펀드에 대한 정부 출자를 줄이고, 코스닥 상장 요건을 강화해 투자 효율을 높이자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지난 정부의 R&D와 모태 펀드 예산 삭감 논리였다. 경쟁국들이 적극적인 산업 정책을 펼치는 상황에 시대에 뒤떨어진 주장이다. 정부가 더욱 적극적인 역할로 민간의 투자와 스타트업 창업을 끌어내야 할 상황이다.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키지 않으면서 스타트업 생태계의 양적 확대와 질적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다음 세 가지다. 첫째, 모험 자본 확충을 위해 재정과 정책 금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최근 정부가 모태 펀드 출자를 대폭 늘리겠다고 한 것은 바람직하다. 모태 펀드는 단순히 규모를 확대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투자 기반을 마련해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모태펀드의 존속 기간을 연장하고 회수된 자금을 모험 자본 시장으로 재투자하는 시스템을 공고화할 필요가 있다.
둘째, 인재와 자본이 스타트업 생태계로 끊임없이 흘러들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이다. 스타트업 생태계는 성공한 소수가 보상 대부분을 가져가는 승자 독식 세계다. 인재와 자본은 스타트업 생태계의 열려 있는 거대 성공 기회를 보고 몰려든다. 따라서 성공한 스타트업의 성과는 창업자뿐 아니라 핵심 인재와 투자자에게까지 골고루 분배되는 제도가 필요하다. 주요 임직원에 대한 주식 연계 보상 제도, 연기금의 벤처 펀드 출자 제도, 창업가와 벤처캐피털에 관한 세제 혜택 등을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셋째, 스타트업 활동의 불필요한 규제를 해소하는 것이다. 2019년 발표한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스타트업 코리아!’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100대 스타트업의 사업 모델 중 53%가 한국에서는 불법이라고 한다. 규제를 없애야 스타트업의 활동 공간이 열리고, 생태계 확대가 가능하다. 신산업 규제 해소로 시장을 열어주는 일을 넘어 정부가 혁신 제품과 서비스의 구매자가 되는 일도 스타트업 생태계 확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