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환 변호사·前 국가인권위 상임위원

대장동 사건 민간 사업자들의 1심 판결에 대한 검사 항소 포기의 파장은 깊고 컸다. 2021년 국민의힘을 대리하여 대장동 사건을 고발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검사 출신으로서 이번 사건을 지켜보는 심정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평소 “대장동 사건은 검사의 공소 취소가 맞는다”는 입장을 밝혔던 정성호 법무 장관은 항소 포기의 경위와 관련해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히 판단할 필요가 있지 않겠냐는 이야기만 하고 항소 포기를 지시하지는 않았다”고 말했고, 법무 차관은 “사전 조율이고 협의 과정이지 수사 지휘권 행사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고 했다. 수사 지휘가 공식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딱히 거짓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법무 장관의 수사 지휘는 간단치 않다. 검찰청법 8조는 “법무부 장관은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고 규정한다. 장관이 수사 지휘해도 된다고 보일 수 있지만 역사적 현실은 그렇지 않다. 2005년 강정구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서 당시 천정배 장관은 불구속 수사 지휘를 했고, 김종빈 총장은 이를 수용하면서도 검찰 수사의 독립성 훼손을 이유로 사퇴했다. 사실 강 교수를 수사 단계에서 구속하느냐 마느냐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음에도 실무상 장관의 수사 지휘에 대해 검찰이 얼마나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줬다.

이번 사건의 진실은 노만석 전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발언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그는 “법무부의 의견을 참고해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지만, 사의를 표명한 후 “지우려 하는 저쪽 요구, 수용 어려워 많이 부대꼈다”는 등 상당한 압력이 있었음을 내비쳤다.

김현정, 백승아, 문금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부터)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 검찰청법•검사징계법개정안을 제출하고 있다. 법안이 통과되면 검찰총장·검사도 일반 공무원과 같이 파면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한편 민주당 측은 법무부에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들의 보직해임·강등 또한 요구했다. /뉴스1

검찰이 항소하겠다는데 장관이 신중한 판단을 계속 당부하면 검찰은 항소 포기 지시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것이 수사 지휘가 아니라면, 굳이 장관이 수사 지휘를 하지 않고 의견 한마디로 검찰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것은 더 큰 문제다. 검찰은 준사법기관이며, 정치권력에서 독립적으로 공정하게 사건을 처리하는 것이 검찰권의 생명이다. 과거 부끄러운 결정들이 있었고 업보처럼 생각되기도 하지만, 이번처럼 일말의 명분도 없고 사건 이후 여권의 적반하장식 저열한 반응은 유례가 없었다.

이번 사건에서 용산에 대한 말은 별로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막현호은(莫見乎隱)’이란 말대로 “은밀히 하는 것처럼 잘 드러나고 분명한 것이 없다”. 정부가 1년 내 검찰청 폐지 법안을 통과시킨 상태에서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겠다고 공공연히 겁을 주는 상황이다. 존폐의 위기 상황에 놓인 검찰 조직을 대변할 총장을 임명하지 않은 이 대통령은 자신과 가깝고 평소 합리적으로 평가받던 정성호 의원을 장관으로 임명했다. 노 전 대행 발언을 짚어보면 검찰총장 역할을 법무 장관이 사실상 대신한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든다. 이런 상황에서 총장 대행이 실세 장관에게 맞서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기는 애당초 무리다. 노 전 대행의 속내대로, 생존을 위해 정권의 눈치를 살펴 처신해야 하는 서글픈 검찰의 현실이다.

검사 항소 포기가 정부의 최종 목표는 아니고, ‘예고편’에 불과하다. 항소 포기를 강행한 정권은 공소 취소를 밀어붙일 것이다. 배임죄 폐지도 시도하겠지만, 대체 입법 없이 전면 폐지는 어렵다. 정권은 총장 권한대행과 서울지검장을 순응적인 인물로 임명한 다음 항명한 검사를 파면해 연금을 삭감하고, 변호사 개업까지 막아 숨통을 조인 후 공소 취소를 감행하려 할 것이다. 그것은 검찰만의 일이 아니라 국가적으로 권력 사유화의 깊고 어두운 상처를 남길 것이다.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정권이 검찰청 문을 닫기 전에 검사들이 결단해야 한다. 비굴하게 얻은 수사 보완권이 무슨 소용인가? 그것이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며, 국가와 국민에 대한 마지막 봉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