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현 고려대 명예교수

2025년 들어 우리 조선업의 미국 진출에 국가적 관심이 쏠린다. 북극 항로 개척 또한 새 정부 출범 후 뜨거운 주제다. 이 주제들은 조선·해운의 다른 중요한 부분을 잊게 만든다.

소형 선박은 우리 조선소가 건조하지 못하고 중국이 수주해 우리 소형 조선소는 고사 직전이다. 우리 조선소의 건조가가 비싸서이기도 하고 일부는 선수급 환급보증서(RG)가 발급되지 못해서이기도 하다. 미국이 곧 전략 상선대 250척을 건조할 때 소형 선박도 포함된다. 중국은 배제되고 우리나라와 일본만이 수주 대상국인데 우리는 건조할 조선소가 없게 될 것이다. 미국 조선소를 부활시켜 줌과 동시에 우리 약점도 보완해야 한다. 우리나라에 중소형 선박을 건조할 조선소가 없어지면 결국 미국과 같은 신세가 된다. 이 해묵은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

미국은 국방 목적 선박에는 발주자에게 세액 33%를 공제해 준다. 여기에 미국선급에 가입하면 2%, 미국선주보험조합에 가입하면 5% 혜택을 더 준다. 우리도 이렇게 하면 중국에서 건조할 때와 한국 국내에서 건조할 때의 차액이 세제 혜택으로 상쇄돼 우리나라에서 소형 선박을 건조할 동력이 생긴다. 수리 조선소 마련도 시급하다. 우리나라는 부산항에 선박 수리를 할 곳이 없어 수리 물량이 중국으로 간다. 소규모 사업으로 수익을 올리니 대형 조선에 외면당한다.

북극 항로가 개척돼도 부산항에서 로테르담으로 갈 때 믈라카해협을 지나는 동서 항로는 여전히 중요하다. 수년간 대형 컨테이너 선박은 수에즈 운하나 남아프리카 항로를 지날 것이다. 더구나 페르시아만에서 우리나라로 오는 원유는 대만 근처를 지난다. 이 선박들의 안전한 항행이 우리 경제에 중요하다. 후티 반군의 공격으로 수에즈 운하를 사용하지 못하고 남아프리카로 우회한 지 수년째다. 그런데 지금도 중국 컨테이너선은 수에즈를 항해한다. 중국 군함의 호위 덕이다. 중국 화주들은 수에즈 운하를 통해 유럽으로 가고 우리 화주들은 남아프리카로 우회한다면 이들의 상품은 중국보다 10일 늦게 유럽에 도착한다. 적기를 맞추려 중국 선사에 화물을 실을 것이다. 우리 선박이 중국처럼 수에즈 통과가 가능하게 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만약 중국이 대만 인근 해역을 봉쇄하면 우리 선박은 어떻게 될까? 필리핀 동부를 지나야 한다. 이 경우 항해 거리는 약 2000㎞, 소요 시간은 4일이 늘어난다. 이럴 경우 석유 수요를 맞추려면 일본은 유조선 10척을 더 투입해야 한다고 공론화 중이다. 우리도 공론화가 필요하다.

북극 항로는 국정 과제로서도 중요하게 다뤄진다. 다른 해상 수송망 이슈도 함께 다뤄져야 한다. 북극 항로를 항해하려면 영하 30도의 극한 지역을 지나야 한다. 일반 컨테이너 박스는 동해(凍害)를 입어 냉동 컨테이너가 필요하다. 우리는 냉동 컨테이너 박스를 제작하지 못해 중국에 의존한다. 컨테이너 박스 확보 문제는 해상 수송망 확보 요소 중 하나다. 북극 항로 개척을 위해 정부가 실증 선박을 북극으로 보내거나 쇄빙선을 만든다고 한다. 대만해협 봉쇄에 대비한 예비 유조선 마련 방안, 수에즈 운하 우리 상선 호위 방안 논의도 함께 진행돼야 한다.

우리 조선업의 미국 진출, 북극 항로 개척에만 매진하다 눈앞의 위기를 방치해선 안 된다. 위 두 가지에 집중하면서도 그간 미뤄둔 중소 선박 건조와 소형 조선소 부활, 수에즈 운하·대만해협 안전 확보 문제 해결을 고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