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섭 재단법인 피플 미래일터연구원장·미래일터안전보건포럼 공동대표

이재명 대통령의 산업재해 근절 의지가 강력하다. 국무회의에서 “안전한 사회를 구축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로, 종합적인 산업 안전 대책을 마련할 것”을 지시했다. 또한 이 대통령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는 용어까지 써 가며 사고 발생 기업에 징벌적 손해배상 같은 강력한 경제 제재를 고려하겠다고 했다. 산업안전감독관 300명 증원을 지시했고 현장에 직접 나가 점검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정부와 국회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정부는 산업재해를 막기 위한 ‘노동 안전 종합 대책’을 마련하려 범정부 협의체를 구성했다. 여당은 “산업재해 사망률 1위 국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산업재해 예방 태스크포스’를 꾸려 강력한 입법 조치를 예고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이렇게 확고하고 구체적인 산재 근절 의지를 연거푸 밝힌 경우는 처음이다. OECD 회원국 중 꼴찌 수준의 사고 사망률을 보이고 어처구니없는 대형 사고가 그치지 않는 현실에 비추어 적절하고 환영한다. 하지만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가 확실한 희망으로 실현되려면 몇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우선, 대책을 만들어 내는 속도보다 그 실효성에 중점을 둬야 한다. 대통령의 주문은 산재를 막을 근본 대책을 세우라는 것이지 비상 대책을 마련하라는 것이 아니다. 영국에서 산재가 사회문제가 된 1970년대에 근본적인 원인 분석과 개선 대책을 마련하는 데 2년, 이를 법제화하는 데 또 2년이 걸렸다. 허둥지둥 겉치레 대책을 마련하기보다 시간을 갖고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우겠다고 대통령을 설득해야 한다.

7월 인천 계양구의 한 맨홀 안에서 오·폐수 관로 현황 조사 중 작업자 2명이 사망했다. 사진은 사고 당시 현장에서 구조 작업 중인 소방대원들의 모습으로, 이재명 대통령은 사건 이후 국무회의에서 "일터의 죽음을 멈출 특단의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뉴스1

그다음으로 규제를 덧칠하거나 과하고 경직되게 만들 우려가 있다. 규제로 가는 길이 언뜻 쉽고 강력해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안전 규제는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넘치고 강하다. 기존의 규제와 정책이 왜 작동하지 않는지 옥석을 가리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돌멩이까지 짊어지고 가야 하는 사업주는 돌아오는 책임에 절망하기 일쑤다.

과거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사고 대응으로 “국민 안전을 위해 국가를 개조하겠다”며 해양경찰청을 해체하고 국민안전처를 만들었지만, 대형 사고는 계속됐고 얼마 안 가 국민안전처도 해체됐다. 문재인 정부는 “중대 재해를 반으로 줄이겠다”며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의 의무와 처벌을 대폭 강화하고 중대재해처벌법까지 만들었지만, 중대 재해는 기대만큼 줄지 않았다. 과학적 접근이 강조되는 안전을 정치로, 규제로 해결하려 했기 때문이다.

최첨단 시대의 산업 안전 주체는 사업주라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업장마다 생산 기술과 시설이 다르고 근로 형태가 다양해서 획일적으로 규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사업주가 스스로 위험을 찾아내고 통제하도록 이끌고, 이를 게을리해 사고를 냈을 때 처벌하는 역할에 힘써야 한다. 이미 50년 전 영국이 그렇게 했고 그 결과 안전 수준이 매우 높은 국가가 됐다.

그간 산업 안전 분야는 여간해서 범정부적인 추진력을 확보할 수 없었다. 대통령의 산재 근절 대책 주문은 놓칠 수 없는 기회다. 관계 부처의 협조와 국회 설득에 힘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국민과 여야를 설득할 수 있는 탄탄한 대책이 전제돼야 함은 당연하다. 대통령의 의지가 또 다른 상처가 아니라 희망이 되는 실효적 대책으로 이어지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