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울대는 종합대학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관악으로 이전한 지 50주년이 된다. 1975년 관악산 자락으로의 이주는 단순히 새롭고 넓은 장소로 캠퍼스를 옮긴 것이 아니라, 명실상부한 종합대학으로의 도약을 위한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서울대는 1946년 국립대로 설립될 때 문리대와 공대, 의대 등 10개 단과대학이 연합해 출범했다. 독립국가로서의 근간을 갖추고 국가를 재건하는 과업에 건설적으로 부응하기 위한 조처였다. 1975년 종합화의 기치를 내건 관악 캠퍼스로의 이전은 이러한 ‘46체제’에서 나아가 중진국의 기초를 다지고 국가 발전을 견인함으로써 선진국 진입의 터전을 놓기 위한 시도였다. 그 결과 서울대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눈부시게 성장하였다.
다만 1946년 건립 당시의 유산과 단점에서 완전하게 벗어나지는 못했다. 종합화를 추구했지만 ‘46체제’처럼 전공과 학과의 세분화, 학과 간 장벽, 단과대 이기주의 등이 여전하다. 그 결과 4차 산업혁명, 디지털 문명 시대인 지금도 지난 문명 단계의 대학 구조를 고수하고 있다. 21세기 문명의 대전환기에 부합하는 대학의 모습이라 하기 어렵다.
종합화 50주년을 맞는 서울대는 이런 구조적 문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문명 시대에 맞는 혁신적 대학 체제로 탈바꿈해야 한다. 무엇보다 과학기술이 사회를 선도하는 추세에 부응하는 교육 체계를 설계해야 한다. 가르치기(teaching) 중심의 교육 패러다임은 인공지능(AI)의 획기적 발전에 힘입어 학습하기(learning)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 디지털 문명의 가속화는 평생 학습 시대를 가파르게 추동하고 있으며, 대학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뿐 아니라 성인 학습자를 위한 교육 기관으로 변모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서울대와 지역대의 역할 분담을 통한 상생도 요구되고 있다. 글로벌 중추 대학으로의 성장도 일궈내야 한다. 서울대의 성장이 다른 대학들의 발전을 견인해 고등교육 생태계를 건강하게 하고, 이 생태계가 다시 서울대의 발전 동력이 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서울대는 또 새로운 문명 구조에 맞는 대학의 ‘역할 영토’를 만드는 데 선도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한국 대표 대학이라는 지위에만 안주할 것이 아니라, 글로벌 사회에서 기후변화와 양극화 해결, 평화 구현, 휴머노이드와 인간의 공존 등의 과업에 공헌하는 글로벌 중추 대학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런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서울대는 교육, 연구, 사회공헌 등 모든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기준과 목표를 새롭게 정립하고 실천해야 한다. 외국 유수 대학을 단순히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적 특성과 서울대 상황에 맞는 독창적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그래야 서울대의 존재 가치가 높아질 것이다.
따라서 서울대 종합화 50주년은 단순한 기념이 아닌 새로운 출발점이 돼야 한다. 1946년 설립 때부터 유지돼 온 ‘46체제’를 과감히 타파하고, 지역의 대학들과 연대하고 세계 대학과 연결해 새로운 고등교육 패러다임을 구축해야 한다. 인간의 가치를 존중하고, 인간 중심의 과학기술 발전 방향을 제시하며, 인간과 인간을 서로 잇는 연결망이 돼야 한다. 서울대가 잘돼야 국가가 발전한다는 도전적 명제를 구성원뿐 아니라 국민에게 설득하고 내재화할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반세기 전의 관악 이전이 단과대·전문대학원의 물리적 통합 시도였다면, 종합화 50주년은 국가와 인류를 위한 교육, 연구, 사회공헌의 세계적 허브가 되는 글로벌 중추 대학 탄생의 원년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