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민주주의 사회를 움직이는 기본 원리를 만든 이들은 18세기 계몽사상가였다. 그중 핵심이 되는 것은 ‘천부 인권’과 ‘사회계약론’이라는 것을 필자는 루이 알튀세르에게 배웠다(‘몽테스키외, 정치와 역사’, 프랑스 대학 출판부, 1959)

“사람은 사람답게 살 권리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진술로 잘 알려진 천부인권은 만인에게 주권을 부여하는 원리로 기본권의 알파이자 오메가로 인식되어 왔다. 한데 이것은 사람의 본래적 위엄에 기댄 명제이다. “바퀴벌레는 바퀴벌레답게 살 권리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진술이 자아낼 헛웃음을 생각하면 금세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태생적 존엄을 기정사실로 하였으니, 이에 뒷받침되어 ‘다수결’ 원칙이 나왔다. 사람은 본래 정의로우니, 그 수가 정의의 권능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민주’를 표방하는 모든 정부, 정당은 이 원리를 절대 지표로 삼는다. 그런데 계몽사상가들이 천부인권을 강조한 건 왕권과 벌이는 싸움에 직면해 었기 때문이다. 천부인권은 구질서를 깨뜨리기 위해 동원된 것, 즉 과거에 대한 현재의 승리를 보증하는 것이다.

반면 이는 현재의 인간들에게 미래를 보장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만인 주권은 자유의 충돌을 필연적으로 야기하기 때문이다. 사회계약론은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다. 주체들 상호 간의 합리적 소통 논리가 수립될 때만 공존과 공진화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천부인권이 과거-현재의 타임라인에 위치한 것과 달리, 사회계약론은 현재-미래의 타임라인에 위치한다.

이 시간대의 차이는 아주 중요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군주제 폐지와 민주사회의 등장으로 ‘천부인권’은 당연한 것이 되었고, 원리상 투쟁 대상인 왕권은 소멸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천부인권의 파생물인 ‘다수결’ 원리만이 권력을 독점함으로써, 다수의 독재로 흘러갈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정 대표는 이날 "우리 국민은 불의한 대통령을 다 쫓아냈는데 대법원장이 뭐라고 이렇게 호들갑이냐"라며 "진짜 삼권분립을 망가뜨린 사람은 삼권분립의 최후 보루여야 할 조 대법원장의 대선개입 의혹" 이라고 했다. /뉴스1

거기서 두 가지 대안이 나왔는데, 둘 다 불완전하였다. 하나는 직접민주주의를 대의민주주의로 간접화하는 것이었다. 국민의 대표자로서 의회가 별도 장치로 세워졌다. 그러나 다수를 소수의 대표자가 대신한다는 것은 권력의 순도에 대한 기대를 동반하는 것인데, 그 대표자 집단의 순결성이 전제될 수 없었고, 거꾸로 더 나쁜 불순물 덩어리가 국민 전체를 오염시킬 위험이 있었다(실제 지금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몸살이 이것이다).

또 한 대안은 다수에 의한 폭력을 법으로 통제하는 것이었다. 사법 권력의 장치가 만들어졌다. 다만, 권리 보호보다 금기와 처벌 권능이 도드라져서, 공동체를 와해시킬 위험이 있었다. 프랑스 혁명기에 로베스피에르가 강력한 법적 제제에 근거하여 혁명의 누수를 차단하려 한 공포정치가 결국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삼권분립론은 이 세 가지 권력, 즉 집행 권력, 의회, 사법부 각각의 기능을 보전하면서 그 불완전성을 제어하고자 고안한 탁월한 아이디어였다. 몽테스키외의 유명한 명제 “권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권력이 권력을 막아야 한다”(‘법의 정신’, 11장 4절)는 금언이 되었다. 모든 권력은 철저히 공평할 때만이 상호 제어가 가능하다. 그게 삼권분립의 핵심이다.

프랑스 철학자 몽테스키외
독일 철학자 칸트

이 점에서 근대정신을 체계화한 칸트의 권력분립론은 특별히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칸트는 민주주의보다 ‘공화제’를 옹호한 사람이었다. 민주주의와 공화제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이는 다수결의 문제점에 칸트가 착목했음을 가리킨다. “권력분립 없이 조직된 민주주의에서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제정한 법을 집행하며, 이로 인해 자신들을 국가의 주인으로 여기고 종으로 여기지 않게 된다. 다수의 의지는 자동으로 일반 의지를 대표한다고 간주되며, 따라서 ‘모두’가 그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마저도 위한다는 명목으로 그런 부동의에 아랑곳 않고 반대로 결정한다; 즉, ‘모두’(를 표방한 어떤 집합체)가, 진짜 ‘모두’가 아니면서도, 결정권을 행사한다. 이것은 일반 의지와 자유에 대한 모순이다.”(제프리 에이브럼슨, ‘미네르바의 부엉이: 서양 정치사상의 전통’, 하버드대학 출판부, 2009)

이 때문에 권력분립이 모든 것에 앞서는 기반(基盤) 원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이 민주주의를 향하고 있을 때 칸트는 권력분립 쪽으로 가지를 비틀었다. 그 가지가 뻗어나간 자리인 공화제에서 비로소 국민의 ‘자유’는 “원초적 계약의 개념에 의해 ‘법의 규제’를 받아들인다.” 즉 자유와 법이 하나로 통하게 된다

권력분립론은 앞서 말한 ‘사회계약론’의 연장선에서 개발된 것이다. 그것은 과거와 싸우는 데 붙들린 다수결 원리를 미래 쪽으로 돌린 획기적 전환점이자, 권력 간 분쟁을 조정하는 유일한 클러치이다. 따라서 그것은 정치의 생태계 그 자체이다. 가령 야구팀은 무수히 많을 수 있으나, 야구장이 없으면 그것은 모두 무용지물이다. 권력분립론은 그 야구장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니 권력의 위계를 나누고, 어떤 권력의 수장을 다른 권력의 성원들이 겁박하는 건, 이념 투쟁이 아니다. 그런 행동은 말 그대로 정치 환경을 통째로 망가뜨리고 말겠다는 자멸적 충동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미 해방 공간에서 ‘다수결 원리’에 목매었던 많은 사람이 월북을 선택했다가 숙청당한 실례를 잘 알고 있다. 당시 넌지시 다수결 원리를 비판한 홍명희는 북한에서 살아남았으니, 이런 아이러니도 없다 할 것이다. 필자는 오늘의 한국 정치가 80년 전의 오류를 다시 범하지 않기를 정말 바란다.

/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