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혁 전 제주한라대 간호학과 교수

간호는 병원 안에서 이뤄지는 기술적 행위로 이해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는 우리 일상 깊은 곳에서 끈기 있게 삶을 지탱하는 행위다. 그리고 간호사는 돌봄을 직업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최근 고령화의 가속, 만성 질환의 증가, 팬데믹 이후 부각된 공중 보건 문제, 그리고 정신 건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의 확산은 간호사의 역할에 대한 기대를 더욱 높이고 있다. 간호사는 개인과 지역사회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건강 전문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지난 6월 21일 ‘간호법’과 시행령 및 시행규칙이 시행됐다. 간호의 독자성과 전문성을 법적으로 인정한 전환점이다. 간호사의 직무와 책임, 활동 범위가 처음으로 독립적인 법률로 명시됐다는 점에서 간호사는 물론 간호 서비스를 제공받는 국민 모두에게 의미 있는 진전이다. 그러나 간호법 시행만으로 모든 과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간호사가 실제로 수행하는 진료 지원 업무의 범위와 기준을 명시할 세부 규칙이 아직 마련되지 않아 현장에서는 여전히 법적 불확실성과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간호사들은 실질적으로 수행 중인 진료 지원 업무에 대해 책임은 부담하면서도 제도적 보호는 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러한 공백은 단순한 행정 절차의 미비에 그치지 않는다. 환자 안전과 간호 서비스의 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문제다. 간호법이 선언에 머무르지 않고 실효성 있는 제도로 작동하려면 후속 규칙의 조속한 제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울러 현장의 현실과 간호사의 전문 역량을 반영한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지침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해외 주요 국가들은 이미 간호사의 역할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확립되어 있다. 미국과 캐나다는 일정 교육과 자격 요건을 갖춘 간호사에게 ‘진료 권한’ 일부를 위임하고 있다. 일본도 고령 사회 대응을 위해 간호직 중심의 ‘지역 포괄 케어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의료 자원의 효율적 배분과 지역 돌봄 체계 강화를 위한 전략이자, 간호 전문성에 대한 사회적 신뢰의 결과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제도보다 현실이 앞서는 간호 환경을 따라갈 법적 기반을 조속히 정비할 필요가 있다.

간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재정립 또한 필요하다. 간호사는 의사의 단순한 보조자가 아니라, 독립적 판단과 윤리적 책임을 바탕으로 한 전문가이다. 의료 현장에서 간호사는 환자의 상태를 가장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회복의 방향을 함께 설계하는 동반자적 존재다. 특히 지역사회 돌봄, 초고령 사회 대응, 정신 건강 관리, 재난 대응 등 복합적 문제 해결에는 간호사의 통합적 시각과 실천력이 반드시 요구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간호사들은 전국 각지에서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병원과 보건소, 학교와 산업체, 시골 진료소와 격오지 의료 현장까지, 그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 그러나 이 손길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사회적 지지와 제도적 기반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간호는 단지 하나의 직업이 아니라, 인간 삶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내는 공공의 자산이다. 간호법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이제는 그 법이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규칙 마련과 사회적 공감 형성이 뒤따라야 한다. 간호사의 손길이 지속 가능하도록 우리 사회가 응답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