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준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현대차 산하 로봇 계열사인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지난 4월 공개한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개발 과정을 담은 영상의 한 장면. /현대차

“값싼 노동력은 없어진다. 부가가치 낮은 일은 모두 AI와 로봇으로 대체될 것이다.” 2018년 유발 하라리가 저서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외친 이 메시지는 한동안 ‘머나먼 미래의 경고음’쯤으로 치부됐다. 실제 당시만 해도 산업 현장은 달랐다. 아마존은 그해 물류 인력을 64만명 이상으로 불렸다. 전년 대비 14% 증가한 수치였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인력 규모를 이후 4년간 13만명에서 22만명대로 대폭 늘리려고 했다. AI가 고용을 위협할 가능성에 대해 엄살이라는 의견에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나 7년 뒤 풍경은 달라졌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올해 상반기에만 1만5000명의 인력을 줄였다. ‘저숙련 노동’ 상징인 아마존 물류 창고에는 여전히 택배 박스가 오가지만, 이제는 사람이 아닌 로봇 100만대에 일을 넘기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연말이면 사람처럼 서고 쭈그릴 수 있는 휴머노이드를 공장에 시범 도입한다. CJ·쿠팡·신세계 등 국내 기업과 식품·의약 제조 현장에선 무인 운반 로봇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문제는 명확하다. AI와 자동화 물결이 노동의 가치를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고민이 생긴다. 물류 센터 일용직이 하루아침에 로봇을 설계·운영하는 전문가로 변신할 수 있을까. 자동차 도색을 맡던 노동자가 휴머노이드에 자리를 내주면, 그는 식구 생계를 어떻게 책임질 수 있을까.

AI는 ‘직접 육체 노동’의 시대를 끝내고 ‘간접 통제형 노동’의 시대를 연다. 관리자, 운영자, 기술 전문가가 살아남고 단순 노동은 밀려난다. 가장 급한 숙제는 ‘취업이 쉬우나 단순 반복에 그쳤던 일자리’의 감소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제조업(372만명), 건설업(137만명), 운수·창고업(77만명), 숙박·음식업(125만명)이 AI 고용 쇼크의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이 고용 상위 업종들은 일용직 비율이 높다. 하라리가 말한 ‘쓸모없어지는 인간’은 더 이상 비유가 아닌 셈이다.

AI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신기술 단계를 넘어섰다. 이제 국가 성장률을 좌우할 핵심 산업으로 부상했다. AI를 통한 추가적인 경제성장률에 대해 국제통화기금(IMF)은 4%, PwC는 8%, 골드만삭스는 7%를 전망한다. 이재명 정부가 잠재 성장률 3%를 목표로 AI 혁신을 전면에 내건 것도 이런 흐름 속에 있다. 휴머노이드, 드론, 스마트 팩토리로 경제 구조를 바꾸겠다는 선언은 글로벌 조류와 맞닿아 있다.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단순 노동자가 부가가치 높은 일자리로 어떻게 연착륙할 것인가. 맞춤형 교육으로 어떻게 기존 노동자들을 ‘AI 인재’로 탈바꿈시킬 것인가. 새로운 노동 교육 시스템은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그러나 한국의 미래 노동 시장 대책은 아직 놀라울 만큼 빈약하고 주먹구구 수준이다.

컨설팅 회사 맥킨지는 2030년까지 AI와 자동화 효과로 일자리 8억개가 사라진다고 전망했다. 한국은 고령화로 젊은 노동력이 줄고, 중장년층 비율이 늘어나는 대표적인 나라다. AI와 노동이 공존할 방법을 하루라도 빨리 그려야 한다. 인구 감소로 부족해지는 인력을 AI로 메울 것인지, AI로 늘어나는 실업을 어떻게 흡수할 것인지, 국가 차원의 치밀한 계획이 시급하다. AI 전환은 성장의 기회이자 고용의 절벽이다. 경고음을 흘려듣는 순간, ‘쓸모없어지는 인간’의 비극은 통계가 아니라 현실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