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주현 의약평론가, 안과 전문의

“수학 올림피아드 수상자 출신 유학파가 국내 의대로 컴백해서 결국 강남 미용 성형 병원 원장이 됐다.” 의사들이 많이 찾는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된 글이다. 이 글에 등장하는 A씨는 실재하는 인물이다. 강남 8학군에서 자랐고, 중고교 시절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이름을 떨쳤다. 주변에선 A씨가 노벨상 후보급 연구자가 될 것이라 기대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해외 유학길에 올라 명문대에서 기초과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진로의 갈림길에서 결국 선택한 길은 국내 의대 편입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수학을 계속하자니 불확실한 미래가 두렵고, 현실적으로 안정성과 소득을 보장하는 직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성적이 뛰어난 소위 고스펙 학생들이 의대로 몰리는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인재들이 다방면으로 진출하지 못하고 좁은 분야에서 소모적 경쟁을 이어나가고 있어 안타깝다.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A씨가 의대 과정을 마친 뒤 기초의학이나 필수 진료과 대신 강남의 미용·성형 분야에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이다. 이유는 뻔하다. 국민 건강을 지탱하는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은 고강도 노동과 상대적으로 낮은 보상으로 점점 기피 대상이 되고 있다. 반면 미용·성형은 수요가 꾸준하고, 고수익이 보장된다. 워라밸도 유지할 수 있다. 국가적 인재가 연구소나 대학 강의실이 아니라, 강남 대로변 병원 간판에 이름을 올리게 되는 배경이다.

개인의 선택을 탓할 수는 없다. A씨는 주어진 환경에서 합리적인 결정을 내렸다. 문제는 사회 구조다. 수학·과학 영재들이 학문적 열정을 이어갈 수 있는 지원 체계는 턱없이 부족하다. 연구직은 낮은 보수와 불안정한 미래로 가득 차 있다. 공공 의료 분야는 인력난과 과중한 업무로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으려 한다. 결과적으로 최고 수준의 인재들이 ‘안정적이고 수익 높은 길’로 몰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사회는 장기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는다.

만약 그가 계속 기초과학을 연구했다면 새로운 알고리즘을 개발해 인공지능 발전에 기여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양자물리학 연구를 이어가 국가 전략 기술을 선도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그는 매일 수십 명의 환자에게 보톡스를 놓고, 미용 시술 상담을 하고 있다. 사회 전체의 자원 배분 차원에서 보면 아쉬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진로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 전략과 직결된다. 한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교육열을 가진 나라다. 하지만 정작 그 교육이 사회적 다양성과 창의적 진로로 연결되지 못한다. 의대 정원 확대나 의료 정책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수학·과학 영재가 연구자의 길을 걸어도 충분히 보상을 받고, 사회적 존중을 얻으며, 안정적 미래를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필수 의료 분야의 처우 개선과 국가적 지원이 없다면 ‘강남 미용 성형 쏠림’은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수학 천재가 미용 병원 원장이 된 사연은 한국 사회가 만들어낸 구조적 결과다. ‘안정적이고 돈 되는 길’만이 합리적 선택이 되는 사회에서 국가적 인재들이 제 역할을 다할 리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인재들이 다양한 길을 걷도록 돕는 사회적 제도와 환경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미래 사회를 바꿀 수도 있는 천재들이 강남의 화려한 간판 아래 묻혀버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