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우성 경희대 명예교수

만해 한용운(1879∼1944)은 자유와 평화를 사랑했다. 야만적인 제국주의 아래에서 그는 이순신과 을지문덕을 칭송했다. 민족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일정한 정도의 무력은 필수라고 봤기 때문이다. 만해는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잃은 시대에 문명의 정도가 낮고 무력이 약해서 나라를 빼앗겼다는 패배자의 처지에 대해 분개했다. 하루바삐 일본으로부터 독립하고 선진 문명을 배워 힘을 길러야 한다고 굳게 믿고 투쟁했다.

만해는 우주의 인과율을 믿었다. 오동잎 한 잎이 나고 지는 것, 그리고 나라의 흥망도 인과에 따른다는 법칙이다. 그는 하지만 숙명론자는 아니었기에 개인의 자유를 존중했다. 가령 망해가는 나라에 어진 지사(志士)가 나타나 대중을 위해 피와 땀을 많이 흘리게 되면 국가의 흥망이 바뀔 수 있다고 보았다.

만해는 망국의 자기 책임론도 이야기했다. 인과의 법칙을 망국에 적용한 것이다. 사람이 망국과 같은 큰 불행을 만나게 되면 흔히 하늘을 원망하거나 남을 탓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이다. 국가의 자멸, 그리고 개인의 빈부와 강약, 모두 다 일정 부분은 자신의 책임이 있다. 만해는 어떤 국가든 스스로 무너진 다음에 비로소 타국의 침략을 받았다는 만고의 사실을 언급하면서 망국의 원인이 제거되지 않는 이상 제2, 제3의 정복국이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만해가 후세대를 위해 써준 반성문의 핵심이다.

한용운은 일본인 검사에게 고초를 겪을 때도 국가 자멸론을 말한 다음, 조선이 망한 이유로 두 가지를 지적한다. 첫째는 우리나라의 정치가 수백 년간 부패해 왔다는 점이고, 둘째는 조선 민중이 현대 문명에 뒤처져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서대문형무소에서 심문받을 때도 그 당시 조선과 일본 사이에 존재하는 국력 차이를 인정했다.

만해는 그러면서도 조선의 민의를 무시하고 군함과 총포 등의 폭력으로 조선을 침략한 일본의 처사에는 항의했다. 일본이 조선의 독립을 승인하면 조선은 일본의 선진 문명을 수입할 수 있고, 일본은 침략주의를 버리고 동양 평화의 맹주가 될 수 있다고도 했다. 구국과 동양 평화의 길을 모색했던 만해를 친일파로 부를 수는 없다. 조선 멸망의 원인에 정치의 부패도 있었다. 현대 문명의 진보에 민감했던 만해는 자유민주 체제를 옹호했을 것이다.

만해는 ‘찬송’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님이여, 당신은 봄과 광명과 평화를 좋아하십니다/약자의 가슴에 눈물을 뿌리는 자비의 보살이 되옵소서/님이여, 사랑이여, 얼음 바다에 봄바람이여.’

나라의 자유와 평화를 좋아하고 약자의 가슴에 눈물을 뿌리는 님이면, 그가 바로 자비의 보살이다. 만해는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을 시로도 썼다. ‘이 우주간에 나 이외에는 없다’는 뜻이다. 자비로운 보살은 유아독존의 당당한 ‘나’이기도 하다.

오는 29일은 만해의 146번째 탄신일이다. 한국 불교 여러 종단의 사부대중들과 시민들이 서울 성북동의 심우장에 모여서 만해의 반성문을 가슴에 깊이 새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