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혁 前 상지대 관광학부 겸임교수·경영학 박사
낙하산 인사./일러스트=이철원

30여 년 전 호텔 연회 지배인으로 근무할 때 약 100차례 디너쇼를 진행했다. 조용필·나훈아·이미자 등 당대 최고 가수들의 디너쇼를 열면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다른 가수들과 달리 조용필은 디너쇼 1주일 전부터 무대를 점검하고 공연 하루 전까지 모든 공연곡을 밴드와 리허설하는 등 실수를 용납하지 않으며 준비하고 무대에 섰다.

그 덕에 공연은 관객의 환호로 뒤덮이고 앙코르 송까지 부르고 난 뒤 무대 뒤로 사라졌다. 그러고 거짓말처럼 무대 뒤 바닥에 쓰러져 물병조차 들 수 없을 만큼 손을 떨곤 했다. 혼신의 힘을 다했음을 증명한 셈이다. 기진맥진한 모습을 보며 왜 그가 ‘가왕’인지 깨달았다. 천재성과 테크닉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죽을 힘을 다해 준비하고 실행하는 열정이 더해져 50년이 지나도 조용필은 전설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100년이 넘는 기업도, 레스토랑도 적지만 이웃 일본만 해도 수백 년 넘은 료칸과 식당이 즐비하다. 교토에 가면 300년 역사를 자랑하는 화과자점이 있는데 어떻게 수백 년을 이어왔는지 궁금했다. 주인에게 물으니 “저희는 제일 잘하는 사람에게 경영권을 넘긴다”는 답이 돌아왔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종업원 중 가장 잘하는 이에게 운영을 맡긴다는 말을 듣고 소름이 돋았다. 당연한 이치인데 우리 현실을 돌아보니 부럽고도 존경스러웠으며 답답하기도 했다. 가족 간 경영권 다툼에 사력을 다하며 고소·고발을 남발하고 방만 경영으로 기업이 송두리째 날아가기도 한다.

사기업뿐 아니라 공기업 사장도 제일 잘하는 사람에게 맡긴다는 철칙은 외면당한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헌법기관 및 행정부 수장, 공공기관장이 수백 자리가 넘는데 대선 캠프 출신이나 공천에 탈락한 여당 정치인, 이런저런 연줄로 기웃거리는 폴리페서 등이 ‘낙하산’을 탄다. 임무를 띠고 떨어지는 ‘특전사 낙하산(특낙)’, 어쩌다 오게 된 ‘불시착 낙하산(불낙)’, 고위 공무원 자리를 배려해주는 ‘생계형 낙하산(생낙)’이 있다. 전문성을 가진 적임자는 손에 꼽힌다.

입으로는 국민을 위한 정부를 표방하면서 국민 안전에 관계되는 한국공항공사나 인천국제공항공사, 코레일 사장마저 검찰·국정원·정치인 등 ‘낙하산’이 줄줄이 임명된다. 한국관광공사 사장이나 상임감사도 외국계 연예인이나 코미디언이 대선 캠프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임명된다.

강원랜드는 27년간 사장 중 민간 기업 CEO 출신은 한 명뿐이었다. 그것이 지속 가능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 중 하나였다. 강원랜드는 연 매출 1조4000억원 중 대부분을 카지노에서 벌어들인다. 복합 리조트를 표방하지만 일반 관광객을 흡수할 수 있는 비(非)카지노 매출이 약 13%에 불과한 것만 봐도 전략 없는 경영이 보인다.

전국 식당은 약 80만곳에 이른다. 매년 창업 기업은 118만개고 5년 내 폐업률이 60%를 넘는다. 이런 다경쟁 구도 속에선 모든 위험 요소 대응 전략을 수립하고 차별화와 상품으로 무장해야 한다. 식당이라는 보편적 경험치만 가지고 본인이 제일 전문가고 배우자나 가족은 둘째 전문가라는 안일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조기 폐업으로 이어진다.

이재명 정부는 최소한 국민의 안전과 민생을 책임지는 공기업만이라도 치열한 경영 환경을 개척하고 실전 경험이 풍부한 인재를 임명하길 기대한다. 역대 정부에서 시행한 적 없는 국민 추천제를 도입한 것은 고무적이다. 실제 임명 결과도 전문가를 배치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친정부 성향 자기 사람을 임명하는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국민을 위한 정부로 역사에 남으려면 조용필 같은 프로를 찾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설령 임명되더라도적임자가 아니면 스스로 고사해야 한다. 그것이 모두가 살길이다. 인사가 만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