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4일 오전 7시 35분쯤 서부 전선 비무장지대(DMZ). 북한이 몰래 매설한 목함 지뢰가 폭발했다. 말 그대로 나무 상자에 담긴 지뢰가 굉음을 내며 터졌다. 폭발과 함께 작전 중이던 우리 수색 대대 부사관 두 명이 다리를 잃는 중상을 입었다. 고요하던 초록의 비무장지대는 그 순간 폭음과 함께 긴장으로 가득 찼다.
현장의 조치와 군의 대응은 놀라울 정도로 일사불란했다. 훈련된 절차와 강한 정신력이 두 전우의 생명을 살렸다. 당시 필자는 작전 부대에서 이 상황을 가까이서 마주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 군과 국민이 공유한 ‘호국의 DNA’, 응전 본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소식을 접한 각급 부대 용사들은 ‘전역을 미루겠다’고 나섰다. 군은 북한의 행위를 ‘비열한 도발’로 규정하고 단호히 대응했다. 국민은 장병들의 희생과 헌신에 뜨거운 응원과 위로를 보냈다. 예비역 젊은이들은 자발적으로 ‘내가 전투원으로 나서겠다’는 챌린지에 동참했다. 시민 단체와 기업도 위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날 우리는 군과 국민이 따로 있지 않다는 걸 실감했다. 대한민국이 얼마나 단단히 뭉칠 수 있는지를 확인했다. 그 장면들은 생생하게 나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어느덧 10년이 지났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외부에서 수많은 기습을 받았다. 6·25전쟁은 일요일 새벽 북한군의 불법 기습 남침으로 시작되었다. 제2연평 해전과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등도 준비되지 않은 순간에 맞닥뜨린 도발이었다. 2015년의 목함 지뢰 도발 역시 그러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때마다 물러서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외부의 도발에 굴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싸우며 끝내 승리한 역사를 가진 나라다.
하지만 최근 우리의 안보 상황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북한은 핵·미사일 전력을 지속적으로 고도화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15일에는 북한이 동해선·경의선 철도와 도로를 폭파했다. 이틀 뒤 북한은 노동신문에서 “대한민국을 철저한 적대 국가로 규정한 공화국 헌법의 요구에 따른 조치”라고 주장했다. 그들의 헌법에 우리를 ‘적’으로 명시한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평화의 본질을 되새겨야 할 때다.
평화는 바람만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강력한 힘으로 지켜야 한다. 국방은 구호가 아니라 정책과 실행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군은 더욱 전문화해야 한다. 정부는 국방을 핵심 국정 과제로 삼아야 한다. 국민도 안보를 일상의 관심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적의 도발은 반복될 것이며, 우리의 대응은 과거 방식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전쟁에서 거둔 승리는 반복되지 않는다는 ‘전승불복(戰勝不復)’이라는 말처럼, 우리도 대응 방식과 수준을 진화시켜야 한다.
비열한 북한의 목함 지뢰 도발은 단순한 과거 사건이 아니다. 그날의 기억은 오늘도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기습을 당하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안보 교육자로서, 그리고 8·4 목함 지뢰 도발 현장에서 대응했던 전직 군인으로서 다시 강조해 묻는다. 평화를 지키는 힘은 바로 그러한 기억과 다짐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