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 대통령이 설정한 8월 1일 관세 협상 시한을 앞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한 우리 고위층이 미국을 방문하고 있다. 전통적 통상 협상과 달리 미국은 경제 안보 공조를 의제로 제시하고 있다. 그 사이 영국, 베트남, 인도네시아는 미국과 기본 협정을 타결했다.
미국은 자국의 수출 통제 시스템을 동맹국에도 확산시켜 왔다. 수출 통제란 국가 안보, 외교 정책, 경제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특정 품목이나 기술의 수출을 금지하는 제도를 말한다. 미국 협상 당국은 이번 관세 협상에서 상대국에 미국식 수출 통제를 채택하고 허점 없이 집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의 수출 통제 시스템은 전략물자, 전문 인력, 금융 외에 특허 제도에까지 적용된다.
최근 체결된 미·영 경제번영 협정(EPD)에서는 ‘지식재산권 보호 이행’이 중요하게 다뤄졌다. EPD는 총 6개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가장 핵심적인 사항은 수출 통제를 공조한다는 4조와 지식재산권 보호를 이행한다는 6조다. 수출 통제가 특허를 포함한 지식재산권과 연계돼 있다는 걸 보여준다.
특허 제도는 산업 발전과 기술 혁신을 촉진한 핵심 제도다. 발명가의 권리를 보호하고, 기술 개발을 장려해 신기술 개발과 상용화를 촉진한다. 또 특허 제도는 기술 정보 공개를 유도해 지식 확산과 산업 경쟁력 강화에도 기여한다. 이러한 역할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도 해외 특허 출원을 해외시장 진출 수단으로 추진해 왔다.
해외에 특허를 출원하는 것은 기업의 기술력을 대외적으로 입증하고, 글로벌 시장에 기술적 신뢰를 확보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1980년대 세계화가 본격화되면서 기업들은 해외 직접 투자를 확대하는 동시에 해외 특허 출원을 경영 전략의 일환으로 활용해 왔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 1기를 기점으로 미국이 경제 안보를 핵심 대외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을 주의 깊게 봐야 한다. 해외 특허 출원의 역할과 의미 또한 단순한 기술·시장 확보 수단을 넘어 기술 안보 관점에서 새롭게 접근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미국 경제 안보 정책의 핵심은 첨단 기술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통제하고 차단하는 데 있다. 특히 미국은 특허법과 수출 통제법에서 해외 특허 출원을 수출(export)로 간주한다. 해외 특허 출원 행위가 법적으로 수출 통제 대상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국에서는 해외 특허 출원서 및 관련 기술 자료를 제한 없이 전면적으로 공개하는 행위가 수출 통제 규정의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 즉, 특허에 포함된 기술의 내용에 따라 국제무기거래규정(ITAR) 및 수출관리규정(EAR)이 적용될 수 있다. 따라서 미국 특허청이 발급하는 해외 출원 허가와는 별도로 미 상무부 무역안보국(BIS)이 수출 허가 필요 여부를 검토한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특허 제도를 주로 상업적 측면에 초점을 맞춰 운영하면서 해외 특허 출원을 장려해 왔다. 실제로 해외 특허 출원 건수가 세계 4위로 많다. 현재 국방 분야에 한정된 비밀 특허 제도와 산업기술보호법을 통해 핵심 기술을 보호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미국에 비하면 해외 특허 출원에 대한 기술 안보 고려가 턱없이 취약하다.
분명 미국은 중국을 겨냥해 특허에서의 기술 안보 관리를 동맹국들에 요구해 올 것이다. 설령 미국의 요청이 없더라도 우리의 국가 핵심 기술을 지키기 위해서는 기존처럼 해외 출원을 장려하더라도 기술 안보적 관점에서 심사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