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섭 조선대 융합수리과학부 교수

지방을 살리려면 지방대부터 살려야 한다는 주장이 반복되고 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구상도 그 연장선이다. 그러나 지역혁신사업(RIS)을 비롯해 그동안의 지방대 살리기 정책은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지만 성공적이지 않았다.

이재명 정부는 지방대 육성 실패를 ‘서울대급 재정과 자율성’ 투입으로 돌파하겠다고 한다. 서울대 예산 80% 이상을 지방 거점 국립대에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울대는 수도 서울의 인프라와 수십 년간의 상징 자산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예산이 결과를 보증하지 못한다. 예산을 투입한들 지역 일자리·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다면 청년은 서울로 간다. 좋은 대학이 없어서 지방이 망한 것이 아니라, 머물 기반이 없어 대학도 무너진 것이다. 이 순서를 착각하고 대학만 강화하면 원인을 무시한 처방이다.

“지방 거점 국립대가 좋아지면 대기업도 오고 인프라도 생기지 않겠는가”라는 반문도 있다. 현실은 정반대였다. 지방 거점 국립대는 예산 지원이 계속됐고 지역 혁신 플랫폼으로 지정됐지만 기업 유치나 일자리 창출은 미미하다. 지원책이 없었던 게 아니라 단기 계획에 머무른 게 문제였다. 정책이 지역 일자리·인프라·정주 생태계와 긴밀히 연계되지 못했다. ‘지방대가 지역과 단절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걸 해결 못 하면 이재명 정부의 ‘서울대 10개 만들기’도 실패를 되풀이할 위험이 있다. 대학 중심 접근이 지역 생태계 설계 없이 추진된다면, 정책은 정권의 유효기간에 갇힌다. 다음 정권에서 정책이 끝나면 그간의 예산은 고스란히 낭비된다.

지방대 지원이 지역 소멸을 반전시킬 정도의 파급력을 가지려면 지역 생태계 설계가 필요하다. 그렇게 하려면 정책에 순서가 필요하다. 우선 카이스트 등 이미 역량과 인재를 보유한 지역 거점 이공계 특성화 대학 중심으로 산업·기술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이들은 기업 유치와 산학 연계의 플랫폼으로 작동할 기반이 있다.

일부 지역에서 변화의 조짐이 감지된다. 경상북도와 구미시,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는 삼성전자 등 주요 반도체 기업들과 반도체 테스트베드 구축에 착수했다. 지방 과학기술원이 첨단 산업 생태계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협력으로 고도화된 산업 생태계가 작동하게 되면, 그 효과는 인근 지방 거점 국립대까지 확산된다. 타 지방대도 이 생태계에서 기술 협력·인턴십·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다. 이로써 대학 간, 대학-산업 간 연결망이 형성된다.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청년의 정주 여건이 마련되지 않으면 이런 생태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청년 정착 도시 설계가 필요하다. 주거·육아·교통·직업 통합 지원 도시 패키지를 마련해야 한다. ‘일할 곳’뿐 아니라 ‘살 만한 곳’이 될 때 청년의 지역 정착이 이뤄진다. 동시에 수도권 대학 정원 감축도 논의돼야 한다. 수도권 집중은 자유 경쟁이 아니라 정책적 집중 개발의 결과였다. 정원 총량을 조정하고, 지역에 배분해 교육 자원 불균형을 바로잡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대학 재정 지원은 성과에 연동돼야 한다. 단순히 지방 거점 국립대라서 지원하는 게 아니라 산학 협력 성과, 지역 고용 유발, 창업 유도 등 성과에 따라 차등 지원해야 한다. 이는 대학이 지역과 연결될 유인이 된다. 지방은 살려야 한다. 그러나 대학만 우선해선 안 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도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실패를 되풀이할 것이다. 구호가 아니라 순서를 갖춘 설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