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추석 전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국회에서 심의 중인 이른바 ‘검찰 해체 법안’은 우리나라 수사와 기소 구조의 근본적 전환을 담고 있다. 그러나 형사 사법은 단순한 조직 개편이 아닌, 국민의 기본권 보장과 직결된 제도다. 특히 정보와 자원이 부족한 사회적 약자에게는 급격한 변화가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장애인으로서 장애인권법센터에서 변호사로 일해 왔다. 학대 피해 아동과 장애인 등 취약한 피해자를 지원해 온 입장에서, 이번 제도 변화에는 우려할 지점이 많다.

첫째, 검찰 제도의 존재 이유는 직접 수사가 아닌 수사 통제다. 지난 70여 년간 검찰은 경찰이 송치한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보고, 위법하거나 미진한 부분을 보완해 기소 여부를 판단해 왔다. 불필요한 중복 체크가 아니라, 1차 수사 통제를 통한 이중 안전망이었다. 2021년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은 자체적으로 불송치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됐고, 검찰은 이러한 사건을 다시 들여다볼 권한이 대폭 제한됐다.

문제는 이번 법안이 여기서 더 나아가, 경찰이 혐의 있다고 판단해 송치한 사건에 대해서도 검사가 실질적인 보완 없이 기계적으로 기소 여부만 판단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단지 수사·기소 분리를 넘어서, 기소의 질 자체를 훼손할 수 있는 구조다. 검찰이 경찰보다 우월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두 기관의 기능과 역할이 다르다는 것이다. 검찰은 법률 전문가로서 사건을 법적 관점에서 다시 보고 1차 수사기관의 수사를 보완하는 역할을 해왔다. 물론 그동안 검찰이 수사 통제를 게을리한 것은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나, 그렇다고 그것이 검찰을 해체할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수사 통제가 검찰 제도의 본질적 이유이기 때문이다.

둘째, ‘수사·기소 분리’라는 개념이 잘못 확장되고 있다. 독일·프랑스·일본 등 대륙법계 국가들에서도 검사는 수사권과 수사 지휘권을 동시에 가진다. 수사와 기소를 분리한다고 검찰의 수사권 자체를 모두 폐지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검찰의 수사권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직접 수사 개시권’으로, 특수 수사(약 1~2%)를 말한다. 기소권과 결합하여 남용 가능성이 컸다. 다른 하나는 송치받은 사건을 법적으로 검토해 보완하는 ‘보완 수사’다. 전체 사건의 약 98%에 해당하며, 공소시효가 임박한 사건이나 경찰이 간과한 사안에 대해 실질적 개입을 가능케 한다.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자며 기소 전 보완 수사도 못 하게 막는 것은 사실상 수사·기소 분리를 넘어 ‘내용 없는 기소’로 이어질 수 있다.

피해자에게 중요한 것은 기소 그 자체가 아니라, 유죄판결로 이어지는 실질적인 공소 유지다. 검찰의 직접 수사 개시권을 없애고 경찰은 수사에 집중, 검찰은 수사 통제에 집중하도록 하면 될 일을 검찰청 폐지로 대응하는 것은 과도하다.

김예원 변호사가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검찰개혁 4법(검찰청 폐지법, 공소청 설치법, 중대범죄수사청 설치법, 국가수사위원회법)' 관련 공청회에서 진술인 발언을 하고 있다. / 뉴시스

셋째, 이번 법안이 시행될 경우, 수사 개시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중수청 신설이 오히려 기관 간 책임 회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주목받지 못하는 사건, 승진과 연결되지 않는 평범한 피해 사건일수록 어느 기관이 수사해야 할지 애매한 상황에서 개시 단계부터 핑퐁(떠넘기기)이 발생할 경우 증거나 참고인이 사라질 위험도 존재한다. 검사의 공익적 기능에 대한 대체 방안도 없다. 현재 검사는 피해 아동 보호 명령, 친권 상실 청구, 후견인 선임 청구 등 공익적 청구권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번 법안들은 그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지에 대해 아무 언급이 없다. 취약한 사람들이 이 공백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넷째, 수사 통제가 형식화될 수 있다. 현행 구조에서는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대해 피해자가 검찰에 이의신청을 하면, 검찰이 사건을 송치받아 보완하고 기소 여부를 판단한다. 하지만 법안에 따르면, 전체의 23% 정도 차지하는 고소 또는 고발 사건만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75% 이상의 사건은 경찰의 판단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절차도 복잡하다. 중수청·국가수사심의위원회 등에 이의신청을 반복해야 한다. 결과는 안 바뀌는데 시간만 오래 걸리는 ‘희망 고문’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막대한 세금이 소요될 기관들이 신설되면서 사건 흐름조차 예측할 수 없게 절차가 복잡해지면, 자연히 법률 비용이 크게 증가한다. 변호사 선임 없이 이 복잡한 절차를 이해하고 대응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변호사를 선임할 여력이 없는 서민이나 사회적 약자에게는 현실적으로 ‘불송치되면 끝’이라는 인식이 굳어질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법은 국민의 마지막 믿음이자 최후의 보루”라고 밝혔다. 형사 사법 체계는 평범한 시민이 범죄 피해를 입었을 때 국가가 나서서 억울함을 풀어주는 최종 장치다. 그러나 법안이 이대로 시행된다면, 법률적 보호에 접근하기 어려운 시민들, 특히 사회적 약자들은 제도 개편으로 국가가 보장해야 할 마지막 보루를 잃을 수 있다.

비용을 줄이고 절차를 복잡하게 만들지 않는 현실적 대안은 이미 제시된 바 있다. 수사와 기소 분리 차원에서 검찰의 직접 인지수사는 폐지하되, 경찰을 포함한 1차 수사기관이 송치한 사건 기록을 검찰이 다시 검토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날로 지능화되는 범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검찰과 경찰이라는 양축이 균형을 이루며 협력·보완하게 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오로지 국가를 통해서만 범죄 피해의 억울함을 풀 수 있는 국가소추주의의 나라다. 경찰과 검찰이 어떻게 다른지, 수사와 기소가 어떻게 다른지 굳이 알 필요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이라도 어느 날 갑자기 범죄 피해자가 됐을 때, 그 억울함을 국가가 어떻게 해결해 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이번 입법은 실제 작동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혼란과 피해자의 고통까지 충분히 감안하고 추진돼야 한다. 바뀌는 이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경우 국회와 정부 모두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변화가 항상 전진은 아니다. 지금이 바로, 멈춰야 할 때를 아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