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는 태생부터 중소기업의 옷을 입은 대기업에 가까웠다. 창업자 이해진은 아버지가 삼성생명 CEO를 지낸 ‘금수저’였다. 설립 직후 2000년 네이버는 포커·고스톱 등으로 현금을 빨아들이던 한게임과 합병했다. 그 자본력을 발판 삼아 네이버는 합병 8년 만에 연매출 1조원을 돌파하며 한국 포털 시장을 제패했다.
그런데도 네이버는 스스로를 재벌이 아닌 기업으로 인식되도록 규모에 비해 특이한 지배 구조를 구축했다. 이해진 창업자는 자신을 이사회 의장 등의 직함으로 내세우며 “동일인(총수) 없는 기업집단”이라 주장했다.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져 네이버는 자산 규모가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될만큼 커졌는데도 불구하고 한동안 정식 지정을 받지 않았다.
인터넷 골목상권에서 ‘국내 1위 포털’이자 ‘플랫폼 갑’ 네이버의 존재감은 일찍이 높았다. 네이버는 검색 알고리즘을 자사에 유리하게 바꾸고 노출 순위를 조정한 혐의로 2020년 공정위에서 총 267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바 있다. 네이버는 중소 인터넷 사업자들에게 상생 파트너보다는 경계 대상이 된 지 오래다.
네이버는 기술 혁신보다 규제 대응에 치중해왔다. 역대 최고 경영자 가운데 창업자를 제외하면 순수 엔지니어 출신이 없다. 초대 CEO 최휘영은 기자였고, 뒤를 이은 김상헌 CEO는 판사 출신이다. 이후 다시 기자 출신 한성숙 CEO, 변호사 출신 최수연 현 CEO로 이어졌다. 네이버 경영진이 기술 개발보다는 규제 회피와 대관(對官) 업무에 관심을 가졌다는 방증이다. 많은 사람이 ‘국내 최고 IT 기업 네이버가 독점적 지위 외 어떤 혁신을 이뤘나’를 묻는다.
네이버 출신 인사들이 최근 정부 요직에 기용되었다는 소식은 씁쓸함을 더한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로는 한성숙 전 네이버 CEO가 지명됐고 대통령실 AI미래기획수석으로 네이버 연구원 출신이 발탁됐다. 국내 중소기업 정책을 총괄할 장관 자리와 국가 AI 전략을 그릴 핵심 보직에 독과점 공룡 기업 출신들이 앉게 됐다. ‘수퍼 갑’ 기업에서 온 인사가 중소기업 정책을 이끈다는 소식은 현장의 우려를 사고 있다. 거대 플랫폼의 논리와 이해관계가 정책 결정에 투영된다면 그 수혜는 대기업과 플랫폼에 돌아가고 중소기업은 들러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장은 인사 소식을 반겼다. 관련 인선 소식에 일부 기술주가 강세를 보였다. 대기업 편향 정책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면 우리 증시의 낮은 윤리의식, 근시안적 시각을 드러냈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중소 사업자 이익을 대변하는 자리다. 그 자리에 오른 인물이 기업 경력만 내세워 대기업 시각에서 정책을 편다면 본말전도다. 또 AI수석은 국내 AI 생태계 전반의 발전을 고민하는 자리다. 특정 기업 기술에 치우치지 않고 대한민국이 글로벌 AI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게 공정하고 개방적인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네이버가 공정 경쟁과 상생 생태계를 위한 결단과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국민의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정부도 ‘민간 전문가를 발탁했다’는 이유만으로 만족해선 안 된다. 그 전문가가 누구를 위해 봉사해 왔고 누구 편에 설 것인지 따져보고 견제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네이버 출신 장관과 수석이 중소기업과 혁신을 위한 길을 제시하며 인사 논란을 잠재우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