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 이후 통일부의 명칭을 바꾸자는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통일부 장관 내정자부터 명칭 변경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국정기획위원회에서도 부처 명칭에서 ‘통일’을 빼는 것에 대한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대선 국면에서도 ‘남북관계부’ ‘평화교류부’ 등의 주장이 나왔다. 해외에서는 통일부 명칭 변경을 위한 연대 서명도 하고 있다고 한다. 수년 전부터 일부 식자층은 남북한을 ‘조선’과 ‘대한민국’으로 호칭하면서 ‘평화적 두 개 국가’를 주장하고 있다. 이런 주장들은 남북을 ‘적대적 두 개 국가’ 관계로 규정하는 북한을 상대로 우호적 메시지를 발신함으로써 남북 간 평화를 정착시키고자 하는 나름의 충정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런 주장들은 우리의 국가 비전에 어긋난다. 남북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통일부의 명칭 변경은 치명적인 대외 메시지를 발신한다. 부처 명칭에서 ‘통일’을 빼는 순간, 국제사회는 한국이 통일 의지를 ‘포기’했다고 받아들일 것이다. 아니 그렇게 간주할 것이다. 일본이 2006년부터 매년 ‘독도의 날’ 행사를 통해 그들의 영토 의지를 세계에 각인시키고 있는 것과 완전히 상반된다.
나아가 북한을 누가 차지하든 한국은 상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해석할 위험이 있다. 2017년 4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의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는 발언을 엄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의도하지 않더라도 통일 의지를 꺾는 것 같은 메시지는 주변국에 나쁜 신호를 발신할 수 있다. 통일을 멀리하고 작은 섬과 같은 현재에 안주한다면 한국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약소국으로 전락하는 결과를 맞게 될 것이다.
더욱이 통일부 명칭을 바꾼다 한들, 북한이 ‘적대적 두 개 국가’ 노선을 변화시킬 리는 만무하다. 남북 관계 단절은 ‘통일’을 뒤로하고 ‘평화’만을 외치던 문재인 정부 시절에 이미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북한의 ‘통일 지우기’는 남북 교류를 통한 작은 이득보다는 내부 사상 오염을 더욱 우려하는 그들의 대남과 대내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통일부 명칭 변경은 우리 내부에서 북한의 ‘적대적 두 개 국가’ 노선 추종이라는 종북 시비를 피할 수 없다. 게다가 헌법 질서 위반 여부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거리까지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새 정부 초기의 정책 추진력과 정치적 리더십을 약화시키고 우리 내부의 정치적 양극화만을 심화시킬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통일부 명칭 변경 발상이 국가 비전과 장기 전략을 도외시한다는 점이다. 국제 정세를 도외시하면서 북한만을 염두에 둔 좁은 시야에서 출발한 관점이기 때문이다. 강대국들은 저마다 국가 목표와 전략이 있다. 중국은 국가 수립 100년이 되는 2049년에 세계 최고의 국가가 되겠다는 ‘중국몽’을 목표로 매진하고 있다. 일본도 세계를 주도하는 ‘메이저 파워’가 되고자 하는 국가 목표가 있다고 한다. 미국은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앞세워 기존의 ‘자유주의 패권 전략’도 바꾸는 중이다.
통일을 지우고 방향성 없이 표류하면서 우리는 도대체 어디로 가려 하는가? 비전 있는 지도자라면 통일된 한반도의 강력한 국가를 목표로 삼을 것이다. 현재 ‘각자도생’의 국제 정세는 새로운 발상과 전략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기존의 대북 인식과 교류 협력 시대의 성공 경험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속 가능한 남북 관계를 구상하는 것은 그다음이다. 간절히 바라건대, 동전의 양면과 같은 ‘평화’와 ‘통일’을 더 이상 싸우게 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