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국가가 강자를 억누르고(억강) 약자를 후원(부약)하면 모두 평등하게 잘살게 된다고 주장하는 정당과 정치인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아직 인류는 이 주장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설득력 있는 보편적 이론이나 실증적 근거를 찾지 못하고 있다. 산업혁명과 함께 민주정치가 보편화돼 절대다수인 경제적 약자의 표가 정권 쟁취에 필수 불가결해졌다. 그래서 이 주장은 그 타당성이나 실현 가능성을 떠나 중요한 득표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세계 정치권은 여야, 좌우를 떠나 정도 차이는 있지만 사실상 이 주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역사를 보면 세계는 지난 100여 년 동안 억강부약(抑强扶弱) 정책을 시행해왔다. 공산·사회주의국가는 아예 국가의 평등 배급으로 빈부 차이를 없애 버렸고, 자본주의 국가는 부자에게서 서민층으로 부를 이전하는 재분배 복지국가를 지향해 왔다. 그런데 공산·사회주의 체제는 1990년대 이후 북한을 최악의 실패 국가로 남긴 채 모두 소멸했다. 자본주의 국가는 2차 대전 이후 부흥기를 거쳐 1960~70년대부터 지금까지 저성장과 부의 양극화를 경험하고 있다. 억강부약으로 평등하고 번영하는 사회를 추구한 인류는 이제 역설적으로 저성장과 양극화라는 실패에 직면했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1960~80년대에는 동반 성장을 실현했다. 하지만 정치 민주화 이후에는 여야 불문하고 ‘경제 민주화’라는 억강부약 이념을 내걸었다. 선진국들은 이미 내다 버린 국가 균형 발전 정책을 맹종해 왔다. 이제 선진국 문턱에서 경제는 연 1~2% 수준의 저성장과 분배 악화라는 선진국병에 직면했다. 모든 경제 불균형은 비대해진 강자 때문이라 한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국민도 그만큼 많아진다. 이를 절호의 득표 기회로 삼는 것은 정치권의 당연한 본능이다. 새 여당은 지금 경제의 어려움이 그동안 억강부약을 부실하게 한 결과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를 강화하겠다고 한다. 정부 지출 확대와 부의 재분배를 강화하면 더욱 균형 잡힌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는 생각일 것이다.
최근 필자는 ‘한국 경제 저성장·분배악화의 원인과 대책’이라는 제목의 논문(한국경제학회발간, 한국경제포럼)을 썼다. 이 논문을 통해 정부의 기업 규제와 약자 우선의 억강부약 정책이 시장의 ‘좋은 성과를 선별하여 차별화(우대)함으로써 모두를 번영으로 이끄는 동기 부여 기능’에 역행하고, 그 악영향으로 기업의 일자리 창출 기능이 둔화되고 국민의 정부 의존도를 심화시켜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가 어려워졌다는 결론을 이론적, 실증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억강부약 정책은 그 의도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시장의 선별적 선택 기능에 반한다. 그러기 때문에 결국 개인과 기업의 태업(怠業)을 조장해 경제 번영에 장애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발견은 그동안의 세계 학계 주장이나 우리 새 정부의 진단과는 정반대 결과다.
인간은 공적으로는 억강부약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자기 돈 들고 시장에 나가면 거꾸로 중소기업보다도 대기업 제품만 선호한다. 또한 좋은 학군과 지역만을 선호해 억약부강(抑弱扶强)한다. 이런 표리부동함은 부자 되고 싶어 하는 인간의 경제 본능이다. 정치가 이에 맞섰다가는 부자 나라가 될 수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따라서 새 정부도 자력으로 부자 되려는 기업과 국민의 앞길을 활짝 열어 이들의 성공을 장려해야 한다. 국민 또한 정부에 기대기보다 스스로 돕는 자조 정신을 체화해 자력 성공 길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 한국 경제의 제2의 도약이 가능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