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하나의 유령이 우리 사회를 떠돌고 있다. 그 유령의 이름은 부정선거 음모론이다. 민주화 이후 무덤 속으로 완전히 사라진 줄 알았던 부정선거 음모론이 어느 날 갑자기 되살아나 우리 사회 곳곳을 배회하고 있다.
이 유령을 무덤 속에서 다시 불러낸 사람은 다름 아닌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지난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그 이유 가운데 하나로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다. 무슨 근거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부정선거의 증거는 너무나 많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선관위의 엉터리 시스템도 다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본인이 이긴 대통령 선거도 부정선거였다고 하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여러 차례의 대법원 판결을 통해 근거 없는 것으로 밝혀진 부정선거 음모론이 시간이 지날수록 눈덩이처럼 커져 선거의 신뢰성을 갉아먹고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협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조금 시간이 지나긴 했으나 지난 1월 21~22일 조선일보와 케이스탯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부정선거 의혹’에 ‘공감한다’는 응답이 ‘매우 공감’ 30%, ‘대체로 공감’ 13%를 합해 43%에 달했다.
물론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전혀 공감 안 함’ 42%, ‘별로 공감 안 함’ 12%를 합해 54%에 달하고 있어 아직은 다수를 점하고 있지만 본인의 이념적 성향이 보수라고 밝힌 응답자만 놓고 본다면 절반이 넘는 70%가 부정선거 의혹에 공감한다고 응답했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숫자다. 민주주의에서 선거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선거 관리의 공정성과 투명성, 신뢰성을 높이는 조치가 매우 필요한 이유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지난 대선 과정에서 발생한 일부 관리 부실은 매우 아쉽다. 특히 사전 투표 당시 신촌동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외부로 반출된 사건과 본투표 당시 강원도 인제에서 투표관리관 도장이 미표기된 채 투표지가 배분된 사건, 그리고 부천과 김포 등에서 지난 22대 총선 때 투표용지가 투표함에서 발견된 사건 등은 의도적, 조직적으로 발생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선관위의 재발 방지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그동안 선관위가 부정선거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많이 노력해 온 것 또한 사실이다. 사전 투표 바꿔치기 의혹에 대응하고자 지난 국회의원 선거 때부터 투표함 보관 장소에 CCTV를 설치하여 누구나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24시간 공개하고 있고, 전자 개표기 조작 의혹에 대응하기 위해 모든 투표지를 개표 사무원이 일일이 직접 재확인하는 ‘수검표’ 절차를 도입해 실시하고 있다.
또한 이번 대선에서는 처음으로 정당 추천인과 시민단체 인사, 교수, 대학(원)생 등 외부 인사 30명으로 ‘공정선거참관단’을 구성하여 후보자 등록부터 선거의 모든 투·개표 절차를 참관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이 과정을 일일이 언론에 공개함으로써 선거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필자 또한 공정선거참관단의 일원으로 참가하여 사전 투표 모의 시험, 우편투표 접수 및 투입, 사전·우편 투표함 보관 장소 CCTV 점검, 투표지 분류기 모의 시험 등의 과정을 직접 눈으로 목격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선거 과정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선거에 대해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 앞으로 선관위가 이러한 참관단 활동을 더욱 확대한다면 선거에 대한 불신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더 나아가 범정부 차원의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더불어 정치적 중립성을 담보하기 위한 선관위의 뼈를 깎는 노력도 절실해 보인다. 또한 선거 관리 인력 확충과 선거 사무원 교육 시스템 개선 및 보수 현실화 등을 위한 정부의 예산 확대도 필요해 보인다. 정부와 선관위는 이번에 불거진 부정선거 음모론을 ‘말도 안 되는 헛소리’로 치부만 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 선거의 공정성과 투명성, 신뢰성을 높이는 계기로 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