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설팅 현장에서 30년 가까이 한국 경제와 산업의 발전 양상을 지켜본 필자는 최근 몇 개월간의 변화가 무척 당황스럽다. 지금처럼 심각한 불확실성과 구조적 침체, 그리고 정치·사회의 혼란이 국내외에서 동시 다발하는 시기는 드물었기 때문이다.

요즘엔 특히 “더 이상 기존의 방식이 통하지 않는데, 새로운 해법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어려움을 호소하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 급격한 산업 재편과 변화 속에서 기존에 경쟁하던 공식을 유지하기도 어렵고, 새로운 성장 경로를 모색하기도 어려워졌다. 과거 데이터에 기반해 점진적 개선을 기대하는 전략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것이다. 기업 경영자들은 고민에 빠졌다.

이럴 때 미래를 가늠해볼 방법은 ‘역산법’이다. 2030년과 2040년에 각 기업이 원하는 미래 시나리오를 설정한 뒤, 그 미래를 실현하기 위해 현재 무엇을 해야 하는지 역산해서 행동 요령을 찾아보자는 방식이다. 불확실성이 뉴노멀이 된 지금, 기업들이 미래를 막연히 예측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래를 통해 현재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기업 중에는 “지금이 움직일 타이밍인지, 아니면 기다려야 할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한 보험사 사례를 보자. 이 기업은 AI, 바이오, 디지털 헬스 등 차세대 성장 분야에 대한 벤처캐피털(VC) 방식의 투자 필요성은 공감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투자 타이밍에 대해서는 여전히 주저하고 있었다. 이 기업이 주저하는 상황은 이해할 수 있다. 이런 회사는 대규모 투자를 서두르기보다는 작은 스텝부터 시작해 선택지를 넓히는 전략을 펼 필요가 있다. 단계별로 명확한 조건하에서 점진적 투자를 실행하는 편이 낫다.

또 다른 난관으로 “정부 규제나 지원이 불확실해 중장기 방향 설정이 어렵다”는 고충을 토로하는 기업들도 있다. 시장, 기술, 정책이 동시에 빠르게 변하는 상황에서 신사업에 진출하려는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어려움이다. 디지털 자산 분야 기업들이 특히 그렇다. 이런 기업들은 불확실한 규제 환경 속에서도 시장·정책·기술 3축을 반영한 전략을 가동할 필요가 있다. 여러 국가 정부 및 규제 기관과 협업해 기업이 다양한 정책 변동성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은 정부 정책의 수동적 수용자가 아닌 정부와 함께 구조를 설계하고, 불확실성을 주도적으로 관리하는 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

불확실한 시기일수록 주어진 ‘판’이 아닌 ‘새로운 판’을 스스로 설계할 수 있는 기업만이 중심에 설 수 있다. ‘정답’을 찾는 작업은 무의미해졌다. 구조를 바꾸고 유연하게 대응하는 역량과 변화를 읽고 미래 전략을 현실로 가져오는 힘을 키운다면, 우리 기업들은 또다시 다음 시대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라 믿는다. 이는 컨설턴트로서 한국 기업들과 함께하면서 필자가 갖게 된 확실한 믿음과 기억이다. 우리 기업들은 늘 위기에 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