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합리한 규제 탓에 오랫동안 정체된 디지털 도어록 산업이 마침내 숨통을 틔웠다. 정부가 기존 알칼리 배터리(1차 전지)만 허용하던 안전 기준을 개정하면서 충전식 배터리(2차 전지)의 사용을 공식 허용했다. 이는 스마트홈 산업 전반의 기술 진화와 글로벌 경쟁력 회복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충전식 배터리는 이미 스마트폰·노트북·전기차 등 대부분의 전자 기기에 적용되며 효율성과 지속 가능성을 입증해 왔다. 하지만 디지털 도어록만큼은 2007년 제정된 전기용품 안전기준에 따라 특정 전원 방식만을 고집해 왔다. 결과적으로 국내 기업은 고도화된 제품 개발에 어려움을 겪었다. 글로벌 시장 경쟁력도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2023년 기준 중국의 한국산 스마트 도어록 수입액은 219만달러에 그치며 3년 연속 감소세를 기록했다. 반면 샤오미가 리튬 배터리를 활용해 원격 제어, 보안 카메라 등 첨단 기능을 탑재한 스마트 도어록을 선보이며 시장을 선도해 왔다. 중국 기업이 앞다퉈 기술 고도화에 나서는 사이, 국내 기업들은 규제 장벽 앞에 발이 묶여 왔던 셈이다.
이번 규제 완화는 디지털 도어록을 단순한 생활 가전이 아니라 스마트홈 기술의 ‘게이트웨이’로 재조명했다는 의미가 있다. 그런 점에서 소비자 편익과 산업 혁신을 동시에 실현하고, 산업적 관점을 반영해 의미 있는 진일보를 이룬 조치다. 특히 직방 등 스마트홈 및 사물 인터넷을 다루는 주요 프롭테크 스타트업은 AI 기반 보안 기술, 고효율 제어 시스템처럼 고도화된 기술 상용화와 출입, 보안, 생활 편의 서비스를 연결하는 차세대 스마트홈 구현에 더욱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소비자 역시 이번 규제 완화로 유지비 절감, 편의성 향상, 배터리 폐기물 감축 등 다층적인 이점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보다 이번 기준 개정이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을 중심으로 유관 부처와 민간 기업이 지속적으로 논의한 성과이며, 산업을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규제 개선의 사례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정부와 업계가 기술의 흐름에 맞춰 협력할 수 있음을 입증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제 이런 전환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직도 생활 밀착형 서비스 전반에는 기술 발전을 가로막는 규제가 여전히 많다. 규제는 산업을 허가하는 수단이 아니라 기술의 흐름을 원활하게 만들어주는 디딤돌이어야 한다. 스타트업은 제도 전문가도, 입법 기관도 아니다. 시장 진입의 문턱을 낮추는 유연한 제도 환경 마련이야말로 기술 혁신을 가속화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다. 이를 위해 정책 당국은 산업과 소비자의 목소리에 더 기민하게 반응하고, 기술 흐름에 대응하는 유연성을 갖춰야 한다. ‘기업은 도전하고, 소비자는 더 나은 기술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진정한 산업 정책이자 미래를 준비하는 방식이다.
충전식 배터리 허용은 한국 스마트홈 산업이 드디어 혁신의 출발선에 섰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는 출발일 뿐이다. ‘규제 개혁 2.0’은 기술 현실에 기반해 이렇듯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생활 밀착형 서비스부터 과감하고 속도감 있게 추진돼야 한다. 충전식 배터리 허용이 산업 전환의 신호탄이었다면, 정부는 이제 더 늦기 전에 ‘제도’라는 엔진을 다시 정비해야 한다. 그 길만이 한국이 진정한 디지털 경제로 도약할 수 있는 전략적 선택이자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