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산업 시대를 넘어 ‘시니어 지식 산업’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경제적 자립과 풍부한 경험을 갖춘 ‘OPAL(Old People with Active Lives)’과 ‘APPLE(Active People in the Later part of their Life)’로 불리는 새로운 시니어 계층이 산업 지형도를 바꾸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5년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의 20.6%를 차지할 전망이다. 2023년 3분기 기준 60세 이상 가구의 월평균 소비지출은 223만원에 달한다.
출판 업계는 구조적 전환기를 맞고 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23년 조사에 따르면, 초판 발행 부수는 평균 2000부에서 1000부로 감소했다. 일반 단행본과 학술·전문서 분야의 매출은 최근 8년간 각각 16.4%, 29.3% 감소했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 속에서 새로운 기회도 있다. 바로 950만 시니어 층의 지식 자산을 산업화하는 ‘시니어 지식 시장’이다.
시니어 세대의 문화 소비 잠재력은 이미 검증됐다. 일본의 ‘하루메쿠(Halmek)’는 60~80대 여성을 타깃으로 한 잡지로 50만명 이상의 구독자를 확보했으며, 호주의 ‘더 시니어(The Senior)’도 시니어 세대를 위한 정보와 소통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양질의 콘텐츠에 대한 시니어 층의 높은 수요를 보여준다.
주목할 점은 이제 시니어 층이 단순한 콘텐츠 소비자를 넘어 생산자로 변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전문직 은퇴자들을 중심으로 한 시니어 저자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의료, 법률, 교육, 경영 등 각 분야에서 수십 년간 축적된 전문성이 양질의 콘텐츠로 이어질 수 있다. 여기에 교육, 컨설팅, 마케팅 등 연관 산업까지 고려하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서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시장 잠재력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 대형 출판사들은 시니어 저자 발굴 및 육성을 위한 전담 조직을 구성해야 한다. 둘째, 전문 분야별 시니어 저자 플랫폼 구축도 필요하다. 의료, 경영, 교육 등 전문 분야별로 특화된 플랫폼은 양질의 콘텐츠 생산을 촉진할 수 있다. 셋째, 정부의 ‘시니어 일자리 창출’ 정책과 연계한 저자 육성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이 말한 것처럼, 950만 시니어는 자신의 경험을 통합하고 다음 세대에 전수하려는 강한 욕구를 지니고 있다. 의료, 법률, 교육 등 각 분야에서 수십 년간 쌓아온 이들의 전문성과 경험은 새로운 형태의 지식 자산이다. 특히 베이비붐 세대의 체계화된 지식은 전문성, 맥락성, 전수 가능성 측면에서 큰 잠재력을 지닌다. ESG 경영이 강조되는 시대에, 세대 간 지식 전수는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동시에 창출하는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전문 지식이 체계화된 콘텐츠로 재구성될 때 더 큰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으며, 출판 플랫폼을 통해 세대를 넘어 공유될 때 지식 생태계의 핵심 동력이 될 것이다. 이는 단순한 자서전적 기록을 넘어 시니어의 경험과 통찰이 실용적 콘텐츠로 진화하는 선순환 구조의 시작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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