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탑./뉴스1

최근 자연스러운 대화로 감정까지 표현하는 AI(인공지능)가 공개돼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이렇게 혁신적인 AI를 운용하는 데 엄청난 양의 전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분석에 따르면 챗GPT가 매순간 평균 2만4000KW의 전력을 소비하는데, 이는 우리나라 약 5만6000가구가 사용하는 전력에 맞먹는다.

에너지를 많이 소비한다는 점에서도 AI는 인간의 지능을 담당하는 뇌를 닮았다. 몸무게의 2%에 불과한 뇌는 우리 신체 전체 산소 소요량의 20%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뇌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이 막혀서 발생하는 질환이 뇌경색이다. 혈액을 통한 산소와 영양소 공급이 안정적이지 못하면 행동이나 언어장애가 발생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에너지의 관점에서 우리 사회를 인체에 비유한다면 혈관은 송전망과 배전망에 견줄 수 있고, 혈액은 망을 통해 흐르는 전기로 볼 수 있겠다.

우리나라에서 전력 소비가 가장 집중된 곳은 수도권이다. 이곳으로 전력을 공급해 줘야 할 송전선로의 건설이 초기 계획보다 7년 이상 지연됐다. 그로 인해 동해안의 석탄 및 원자력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을 태백산맥 너머로 가져오는 데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그나마 전력 당국의 노력으로 동해안에서 오지 못하는 전력 대신 조금 비싼 수도권 내의 다른 발전 자원을 공급하여 소비자들이 느끼는 불편함은 없을지 모르지만, 전체 발전 비용의 증가는 오롯이 국민의 몫이 되고 있다.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송전망 건설이라는 국가 차원의 노력이 당연히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이른바 ‘밀양 송전탑 사건’ 이후 신규 송전망 건설에 사회적 수용성이 낮아 큰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런 교훈을 반영해 송전망 건설에서 인허가 절차 개선과 해당 주민들에 대한 보상 및 지원을 확대할 근거를 담은 법안은 아쉽게도 국회의 소관 상임위조차 통과하지 못한 채 폐기를 앞두고 있다.

현실화된 전력난을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방안은 지연된 송전망 건설을 최대한 앞당기는 것이다. 하지만 신규 송전망이 건설, 운영될 때까지는 현재까지 개발된 기술로써 기존의 송전망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대안들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한시적 운전 방안에 대한 기준과 절차 수립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통상 송전선은 두 개의 회선으로 건설하고 각 회선이 용량의 50% 이하로 운전되도록 하여 다른 하나의 회선이 고장 나더라도 전체적인 송전에 지장이 없게 해 신뢰도가 담보되도록 운용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송전선 건설이 지연되는 구간에 대해서는 한시적으로 용량의 50%를 넘어서 운전하도록 허용하고, 만약 고장이 발생하면 미리 약속된 발전기와 부하를 자동으로 탈락시켜줄 수 있는 장치의 도입을 고려해볼 수 있다. 안정적으로 운영해 오던 운용 기준 개정을 논의한다는 점에서 심층적인 기술 검토를 거친다면, 산업부 고시의 개정 등을 통해 비교적 단기간 내에 시행할 수 있는 방법이다.

물론 송전망 신뢰도 기준 완화와 같은 대안은 정전과 같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럼에도 도입 가능성을 논의해보자고 제안하는 것은 이 시점에서 태백산맥 너머 수도권으로의 송전난을 해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전력망 관련 주체들의 독립적이고 체계적인 교차 검증 등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 하루빨리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그중에서도 수도권의 전력 수요는 AI 등 혁신기술 확산, 전기화라는 시대 흐름, 그리고 차세대 산업에 대한 투자로 인해 지속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다. 지금 전력의 공급 구조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이 AI 연관 산업이나 반도체 산업에서의 경쟁력을 전력난으로 잃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