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제방 붕괴에 따른 대규모 홍수해가 연이어 일어났다. 2020년 섬진강, 2022년 포항 냉천, 2023년 오송 미호강에서 제방 붕괴로 엄청난 재산과 인명 피해가 발생해 사회적 대혼란을 야기했다. 이제 서울 같은 대도시의 제방 주변 저지대도 걱정해야 할 형편이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 홍수해를 예방하고자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전국의 수해 현장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자주 접하게 된다. 홍수로부터 생명과 재산을 지킬 최후 보루인 제방의 붕괴 원인이 주민에게 있는 게 적지 않다. 농기계로 제방 비탈을 갈아 호박 농사 짓는 곳, 제방 밑둥치를 깎아 텃밭을 조성한 곳, 제방에다 말뚝을 박아 자전거 동호인 쉼터를 만든 곳, 제방에서 쉴 그늘을 위해 뿌리가 빠르게 자라는 나무를 심은 곳, 하천 부지를 사유지화한 곳 등 제방을 훼손한 곳을 흔하게 본다. 이게 얼마나 위험천만한 행위인지 일부 주민은 모르는 것 같다. 국가에서 아무리 튼튼한 제방을 만들고, AI나 IT 같은 첨단 기법을 동원해 홍수해를 예방하려고 한들 제방에 손상을 입히면 모두 무용지물에 지나지 않는다.
홍수 범람 위기에 처한 장면을 목격한 주민이 소방서에 신고만 했다는 뉴스에 어리둥절했다. 마을 주민들과 소통해 삽이나 모래주머니를 들고 뛰쳐나와 수방(水防) 활동에 동참했다는 미담은 왜 없는가. 땅이 수면보다 낮은 네덜란드에서 어린이가 구멍 난 제방에 팔뚝을 넣어 막았다는 이야기, 재해가 많은 일본에서 제방이 붕괴 위험에 처했을 때 주민이 준비된 모래주머니 등 각종 물품을 들고 하천 관리자보다 현장으로 먼저 달려간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렇게 주민이 참여하는 수방 활동은 여전히 남의 나라 일로만 여길 것인가.
최근의 국가 물 관리 일원화 정책에 따라 하천 관련 업무가 환경부로 통합되는 과정에 각 유역환경청의 하천 관리자에게 떠넘겨진 업무량은 폭증했다. 인력이 부족한 가운데 과중한 업무와 무거운 책임만 더 뒤따르게 된 하천 관리직은 이제 기피 대상이다. 그만큼 주민에 의한 제방 훼손에 대한 감시도 훨씬 버거워져 재해 위험성은 한층 높아진 상황이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제방 설계 빈도가 하천마다 다르지만 최고 200년 이하이다. 설계 빈도 200년 규모의 시설은 200년에 한 번 발생하는 홍수량에 대응해 방어하는 능력을 가진다. 즉 이를 초과한 홍수의 범람에 대비한 제방으로는 설계되어 있지 않아 홍수가 넘치면 제방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의미다. 요즘 발생한 홍수 현장에서는 홍수량이 무려 500년, 1000년에 한 번 발생하는 수준까지 근접했다는 보고도 있다.
이런 가운데 하천을 둘러싼 최대 수혜자인 대도시 강변 주민들조차 범람 시 대피 요령 외에 제방 붕괴를 막는 수방 활동 내용은 전혀 모르고 있어 우려스럽다. 제방이 붕괴하지 않고 넘치기만 한다면 그나마 홍수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이제는 방재 선진국처럼 강변 주민들로 구성된, 이른바 ‘수방 자경단’을 구성해 주거 지역 내 제방의 훼손 여부를 감시하고, 홍수 범람 재난 시 제방 붕괴를 막을 최소한의 수방 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해야 할 때이다. 은퇴한 수방 전문가를 활용할 수도 있겠다. 덧붙여 주민들이 긴급하게 사용할 수방 장비와 비품을 보관할 ‘수방 비품 보관 센터’도 외국처럼 홍수 범람 취약 지구에 당장 설치·운영할 것을 제안한다. 차제에 제방을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더 엄격하게 조치해야 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대도시 내 홍수 범람은 미래의 일이 아니라 금명간에 발생할 수도 있다고 인식해야 한다. 이에 따라 국가에서 범람에도 안전한 제방 설계 기준을 하루빨리 세워야 하지만, 참사로 이어질 대도시 하천 대범람에 대해서 더 이상 나라에만 전적으로 의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제는 시민 스스로도 능동적으로 제방 훼손을 감시하고, 위급 시 수방 활동에 나서야 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