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들의 의료 현장 이탈이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12일 서울 지하철 2호선에 정부의 '의료개혁 완수' 광고가 송출되고 있다. 2024.3.12/뉴스1

의과대학 입학정원 2000명 증원 문제로 파장이 계속되고 있다. 필자는 과거 보건복지부에서 건강보험과 의료정책을 다루어 본 경험을 바탕으로 몇 가지 소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의료서비스는 귀중한 사람의 생명과 신체를 다루는 것이므로 시중에서 거래되는 일반상품과는 다른 성격을 가진다. 의료는 대표적인 공공재(公共財)로서 경제학상의 수요, 공급 이론이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의료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국가가 관여하고 있다.

영국 등 영연방 국가들은 국가가 병원을 직접 운영하고 비용의 거의 전부를 부담하고 있다. 민간 병의원이 의료를 제공하는 나라에서는 건강보험제도를 통해 국가가 진료수가를 통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77년 건강보험제도를 시작하여 1989년 12년 만에 모든 국민에게 적용하였다. 비교적 낮은 보험료로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세계적인 우수 사례가 되고 있다. 이는 비교적 낮은 의료수가에 묵묵히 의료를 제공해 준 의사들의 공도 있다고 본다.

의료서비스의 특성상, 의료에 대한 전문지식은 의사만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공하는 의료의 수준과 양은 의사가 결정한다. 그러므로 의사수를 대폭 늘리면 필연적으로 진료비가 크게 증가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결국 보험료와 진료 시 본인 부담이 올라가게 된다.

우리나라 국민총생산(GDP)에서 국민의료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2022년 기준으로 9.7%이다. 미국은 16.6%로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우리도 어느새 OECD 평균 9.3%를 상회하고 있다. 더욱 문제는 우리의 경우 최근 그 증가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점이다(2018년 7.5%, 2020년 8.3%).

약 20년간 입학정원이 동결되어 있었고, 장기적으로 볼 때 의사수가 부족하므로 미리미리 크게 늘려가야 하는 당위성이 인정되지만, 국민의료비의 부담 수준도 국민이 감당할 만한 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의료개혁은 의사수의 증원만으로 되지는 않는다. 건강보험제도는 재원의 한계와 자영업자, 농어민 소득 파악의 어려움 등으로 완벽한 제도로 시작할 수는 없었다. 이제 시행된 지 50년이 되어가니 새로운 전환점에 와 있다.

특히 필수의료와 의료공급이 왜곡된 부분에 대한 정상화가 시급하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의료를 제공하는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정부는 의료계 전문가와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논의하여 이 부분에 대해 적정 수준으로 의료수가를 올려주어야 한다. 여기에 보험재정을 아껴서는 안 되며, 그래야 국민이 질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이는 매우 시급한 과제이다.

의료라는 공공재는 국민의 생명을 다루는 일이므로 의사는 잠시라도 그 공급 현장을 떠나서는 안 된다. 정부와 의료계가 서로 한 발씩 양보하여 하루 속히 의료현장이 정상화되고 학생들이 학교로 돌아오게 해야 한다.

정부가 제시한 2000명 증원의 절반 정도 수준으로 우선 5년 정도 시행하여 그 성과를 평가하고, 국민의료비의 변동 추이도 면밀히 검토하여, 그때 가서 추가 증원 여부를 검토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것이다. 모두가 솔로몬의 지혜를 찾아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