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김대중 대통령의 재임기간은 1998년 2월부터 2003년 2월까지였다. 이 기간 중 기억나는 일을 꼽으라면 많은 이들이 IMF 경제위기 극복, 2002년 한일 월드컵 등을 언급할 것이다. 하지만 수공학을 전공한 학자의 입장에서는 1998년과 1999년의 임진강 홍수, 2002년 태풍 루사로 인한 전국적인 피해 상황이 떠 오른다. 특히 태풍 루사로 인한 사망・실종자는 246명에 달했으며, 5조원이 넘는 재산피해액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기록이다.
1990년 한강의 대홍수로 일산 제방이 붕괴되고 당시 경기도 고양군의 약 70%가 물에 잠기는 피해를 입었다. 이 일은 건설부가 담당하던 방재업무를 내무부로 이전하고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업을 통한 재난관리로 시스템을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1996년부터 해마다 반복된 경기 북부 지역의 대홍수와 2002년 8월 태풍 루사의 충격은 기존의 수해방지 시스템으로는 더는 이 상황을 막을 수 없다고 모두가 인식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근원적인 대책 마련을 위해 김대중 대통령은 대통령 훈령으로 2002년 11월 2월 ‘수해방지대책기획단’을 만들었다.
당시 기획단은 범정부 차원의 수방대책 수립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국무총리 산하에 설치됐다. 국무조정실장을 단장으로 행정자치부, 건설교통부 등 10개 이상의 관련 부처에서 담당 공무원들이 파견됐으며, 25명의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2003년 4월까지 약 6개월의 활동기간을 통해 기획단은 2011년까지 총 42조 7천억원을 투자하는 ‘수해방지대책’을 수립했다. 여기에는 유역종합치수계획 수립 및 하천유역관리체계 구축, 재해위험요인 조기 제거, 하천시설물 유지관리 강화, 하천시설물 설계기준 등 재정비, 수해방지사업 효율화를 위한 제도 개선, 재해대응 및 복구체계 개선, 범국민적 수해대응체계 확립 등과 같은 근본적인 수방시스템 개선방안이 포함됐다.
이를 계기로 추진된 많은 대책들은 20년 가까이 우리나라를 홍수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최근의 상황은 급변하면서 기존 시스템의 한계가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 2020년 8월 섬진강의 홍수는 댐과 제방의 치수 능력의 부족을 보여줬으며, 2022년 여름 서울과 포항에서의 침수는 수방에 취약한 도시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냈다.
여기에 더해 올 여름 장마로 벌써 50명의 사망・실종자가 발생했다. 오송 지하차도의 침수사고와 경북 예천 산사태 등은 우리나라 수방시스템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준다. 이에 대한 답은 2003년 기획단의 대책 이후 큰 변화없이 지속된 현재의 체계로는 반복해서 극한호우가 발생하는 지금의 상황에 대처가 어렵다는 것이다.
앞으로 20~30년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새로운 수방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피해가 났을 때마다 일부 정부 부처들이 TF 형식으로 진행해서 만들어내는 계획들은 근본적인 대책이 되기 어렵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기후 상황, 과거보다 더 복잡해지고 다양해진 재난피해 인자들을 반영하고, 앞으로 진행될 우리의 미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대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제2의 수해방지대책기획단 설치를 제안한다. 관련 부처의 공무원들과 민간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현 상황을 철저히 조사하고 치열하게 토론해서 꼭 필요한 대책들을 만들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는 대책 추진에 필요한 법의 제・개정과 예산 확보도 국회, 기재부 등과 함께 협의해야 한다.
2003년 2월 퇴임한 김대중 대통령은 그 해 4월부터 시작된 수방방지대책의 시행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속된 홍수피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직접 수행방지대책기획단을 만들었고, 이를 통해 수립된 대책들은 이후 약 20년 동안 우리나라를 수해에 강하게 해주었다. 여전히 장마가 지속되는 바로 지금이 미래를 위한 대책 마련의 시작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