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제작 현장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지금의 콘텐츠 시장은 상상 이상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구문은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오징어게임’ ‘기생충’ ‘더글로리’ 등 K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제작 역량을 인정받았지만 혹시 홍콩 영화처럼 그 영광이 한순간에 사라지진 않을까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30년간 50편 넘는 드라마 작업에 참여했지만 그중 지난해 방송한 드라마 ‘재벌 집 막내아들’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이 드라마 지식재산권(IP)의 절반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IP를 보유하면 해외 방영권, 포맷 수출, OST 등 부가 수익에 관한 권리도 갖게 된다. 좋은 드라마를 만들어 제작사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IP를 확보해 회사를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드라마 제작사로선 선순환의 출발점이다. 우리 제작사는 실제 2010년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IP 100%를 확보한 덕에 10년 넘게 관련 매출을 얻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내 제작사는 “IP가 없으면 미래가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글로벌 OTT들에 IP를 통으로 넘기고 있다. 10여 년 전 1억원 수준이던 드라마 편당 제작비는 20~30배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광고 매출 감소로 국내 방송사들은 지갑을 닫고 있어서, 제작사들은 투자 비용 회수를 위해 글로벌 OTT에 IP를 고스란히 넘기는 계약을 맺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제작사들이 이대로 가다가는 글로벌 OTT의 하청 기지가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크다.

국제 경쟁 환경도 팍팍하다 못해 살벌하다. 세계 콘텐츠 시장에서는 각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은 ‘국가 대항전’이 치열하다. 콘텐츠를 국가 전략 산업으로 키우고 있는 미국, 영국, 스페인 등은 영상 콘텐츠 산업 활성화를 위해 제작 비용의 일부를 세액공제해주는데, 최근에는 공제율을 20~40%까지 높이며 시장 주도권을 잡으려 노력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제작사 규모를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으로 나누고 3, 7, 10%씩 공제해주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9년째 제자리걸음으로 제작비 세액공제 제도를 시행 중인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제작사 대표가 정부를 향해 세금 깎아달라는 얘기를 꺼내는 것은 편치 않은 일이다. 그러나 콘텐츠 세액공제 확대는 성공한 제작사나 유명 크리에이터들을 돕자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K콘텐츠의 전성기가 더 길게 이어지도록, 지속 가능한 제작 생태계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만약 ‘재벌 집 막내아들’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만들었다면, 국내에서 제작했을 때에 비해 90억원 가까이 세액공제를 더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돈은 제작사가 글로벌 OTT와 협상할 때 IP를 지키는 방패가 되고, 제2의 ‘재벌 집 막내아들’을 제작하는 데 필요한 기술 투자나 신진 크리에이터 발굴에 투자할 힘이 될 수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최근 영상 콘텐츠 산업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국이 ‘세계 콘텐츠 4대 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필요한 세제 및 재정 지원을 하겠다고 밝힌 것은 반가운 일이다. 부디 정부가 내놓을 지원책이 세계 콘텐츠 시장에서 밤낮없이 뛰고 있는 제작사들에 단비가 됐으면 한다.

’재벌 집 막내아들’에서 순양그룹 진양철 회장은 ‘전자 계열사가 국내 1위’라고 자랑하는 장남에게 “니 어디 전국체전 나가나”라며 호통을 친다. 콘텐츠 기업들은 이미 ‘전국체전’이 아니라 국제 전쟁에 뛰어든 지 오래다. 이제는 우리 제작사들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벗어나도록 손을 내밀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