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태 이후에도 안전사고 담당 공직자들의 근무 일탈은 여전하다는 사실을 또 한번 알게 돼 씁쓸하다. 공직자들의 근무 자세가 바뀌길 바랐으나 요원한 일로 드러났다. 세월호 구조에 나선 소방과 해경 해군이 서로 다른 통신망을 쓰는 바람에 희생이 커졌다는 이유로 정부는 재난 안전 통합망 구축에 나섰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무려 7년간의 공사를 거쳐 국가재난안전통신망 개발 사업에 1조5000억원이라는 거대 혈세가 투입됐다. 망 구축에 3600억원, 단말기 구입비에 4000억원, 운영비에 7000억원 투입됐다. 그러나 이번 이태원 사태에서 무용지물로 드러났다. 전혀 자동화되지 않고 수동으로 작동되는구태의연한 구조 때문이었다.
무엇이 문제였나. 산재한 통신망들만 서로 통하도록 설계됐지 재난을 예측할 기초 데이터 형성은 완전히 무시했다. 통신 장비나 망은 하드웨어에 해당하지만 데이터는 완전히 소프트웨어다. 따라서 데이터 지능은 없이 하드웨어만 화려한 재난망이었다. 소프트웨어를 배제한 이런 현상은 공직 사회에 만연한 고질적 하드웨어 중심 사고방식에 기인하는 것이다. 실시간 자동화를 염두에 뒀다면 재난 데이터 설계가 포함됐어야 하는데 불행히도 거기에는 1원도 배정하지 않았다. 재난은 예고 없이 터지므로 사람의 수작업 개입을 최소화하고 재난 상황을 자동 검출하게끔 만들었어야 했다. 사람은 방심하면 실수하게 돼있으나 기계는 그렇지 않다. 따라서 재난망에 거금을 들였으나 예전 단순 전화망 수준에 머물렀다.
비유하자면 고속도로만 만들어 놓았지 재난 상황을 피할 수 있는 안전 보장 기능이 완전히 제외돼 있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운전자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위험 속으로 빠져들어갈 수도 있는 도로로 작용했다는 뜻이다. 도로 구석구석에서 폐쇄 회로를 통해 수집되는 실시간 데이터는 무척 많다. 그걸 선별해 재난망에서 돌려야 한다. 그런데 공공 데이터임에도 불구하고 사회 안전망 구축에는 전혀 활용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벌금 고지에 활용되고 아니면 상용으로 기업에 유상 제공하는 데 그치는 현실이다. 공중 안전은 뒷전이고 누군가 돈 버는 마케팅에 주로 쓰인다면 얼마나 기가 막히고 황당한 일인가. 말로만 빅데이터 시대를 외칠 게 아니라 공공 데이터를 시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쪽으로 먼저 사용하고 그다음에 다른 활용 방도를 찾는 게 맞지 않겠는가. 지금 어느 지자체든 빅데이터 연구실을 갖추고 있다. 안전 수준 격상은커녕 돈 버는 데만 혈안이 돼있는 현실을 보면 사회 전체가 얼마나 돈의 노예가 돼왔는지 알 수 있다. 따라서 정치권만 책임 공방을 주고받을 사안도 아니다.
재난안전통신망 사업을 7년씩이나 끌었다면 과거 행적에 대해 정치권 어느 쪽이든 과연 당당할 수 있을까. 현 정부가 방조했다면 현재 야당은 통신망 구축 당시 정권을 쥐고 있었으면서도 어디서 뭘 하고 있었느냐는 반문도 가능하다. 시민 안전이 우선이라는 인간 존엄의 가치를 공유하는 데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는 것 아닌가. 요즘은 스포츠도 실시간 데이터를 토대로 경기현장에서 작전을 구사하는 시대다. 누구로부턴가 수동으로 신고받고 나중에 사건 규모를 파악할 것이 아니라 기계적으로 사고 가능성을 자동으로 진단하고 자동 대처하는 방법을 충분히 쓸 수 있는 세상이다.
데이터 지능도 갖추지 못한 K재난망을 개통하면서 세계 최초라고 자화자찬했던 과거에 대해 알고 있다면 누구든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이 떳떳할 수 없다. 뒤늦게나마 정부가 인파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도 통합 데이터 설계가 잘못되면 간단히 무용지물이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2~3개월이면 충분할 데이터 설계 작업을 업체만 믿지 말고 전문가에게 맡겨 제대로 해내야 할 것이다. 그 정도로 치밀하게 작업하지 않으면 또 실패로 끝나 현 정부도 과거 정부와 하나도 다른 점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