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미칠근(一米七斤). 쌀 한 톨을 만들려면 농부가 일곱 근의 땀을 흘려야 한다는 뜻이다. 쌀알 한 알 한 알이 농부의 수십 번 손길을 거친 노력의 산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쌀 ‘米’ 자를 분해하면 八十八이 되고, 파종에서 수확까지 88번의 농부의 정성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풀이되기도 한다.

쌀은 우리 민족의 주식(主食)이고,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함께해왔다. 또한 벼농사는 식량 안보는 물론 홍수 조절, 대기 정화, 환경 보전 등 돈으로 매길 수 없는 크고 다양한 공익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쌀에 대한 관심과 대접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작금의 농업인들을 보면 일곱 근의 땀에 일곱 근의 눈물까지 흘릴 만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24년 만에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6%대를 기록하며 모든 물가가 급격히 뛰고 있지만 대한민국의 쌀만은 예외다.

현재 산지(産地) 쌀값은 재고 과잉과 소비 부진으로 전년 대비 20% 하락한 80㎏ 기준 18만원으로, 쌀값 하락 폭이 45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역대급 물가상승률과는 반대로 산지 쌀값은 역주행하고 있다. 정부는 산지 쌀값 하락세를 막기 위해 지난 2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지난해 초과 생산된 쌀 27만t 전량을 매입해 시장에서 격리했지만, 가격 하락 폭 둔화 효과가 미미해 추가 10만t을 오는 8월말까지 추가 격리하기로 했다.

하락하는 쌀값처럼 요즘 쌀밥 또한 말 그대로 찬밥 신세로 전락했다. 탄수화물 섭취는 비만⋅당뇨로 연결될 수 있다는 오해와 인스턴트 식품, 대체 식품의 증가 등으로 인해 쌀 소비량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통계청의 양곡 소비량 조사 결과를 보면 2021년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6.9㎏으로 30년 전인 1991년 116.3㎏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줄었다. 1인당 하루 쌀 소비량은 155.8g으로, 시중에 판매하는 즉석밥이 200g임을 감안했을 때 한 사람이 하루에 밥 한 공기도 채 먹지 않는 셈이다.

지속적인 쌀값 하락과 쌀 소비 감소는 식량 안보의 최전선을 지키고 있는 쌀 산업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다. 1년에 4모작이 가능한 최대 쌀 수출국이었던 필리핀이 ‘부족한 식량은 수입하면 된다’는 인식 아래 농업을 등한시하고 산업화에만 집중한 결과, 세계적 쌀 파동 때마다 국민의 식량 부족으로 폭동 사태 등 몸살을 앓는 ‘최대 쌀 수입국’이 된 사례에서 식량 안보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다. 쌀 생산 기반이 한번 무너지면 다시 회복하기까지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비용과 노력이 필요하다.

“밥이 보약이다” “밥심으로 산다”라는 말이 있다. 쌀을 먹으면 무조건 살이 찌는 것이 아니다. 쌀 속에 들어있는 탄수화물은 섬유질이 30~90% 정도 들어있는 복합 탄수화물이다. 포도당만으로 구성된 단순 탄수화물과는 다르다. 쌀 전분은 밀 전분에 비해 비만 예방에 효과적이고, 소화 흡수가 느려 급격한 혈당 상승을 방지한다. 쌀 단백질은 필수아미노산인 ‘라이신’을 밀가루⋅옥수수보다 2배 이상 함유하고 있어 혈중 콜레스테롤 중성지방 감소에 효과가 높다.

8월 18일은 농림축산식품부와 농협이 제정한 ‘쌀의 날’이다. 다음 달이면 8번째 쌀의 날을 맞이하며, 올해 햅쌀이 출하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풍성한 황금 들녘과 곳간이 가득 들어찬 풍년 농사가 반갑기도 전에 재고 과잉과 산지 가격에 대한 걱정부터 앞서는 것이 현실이다. 가격 하락과 소비 감소, 이중고로 고통받고 있는 우리 농업·농촌·농업인을 위해, 그리고 굳건한 식량 안보를 위해, 쌀 산업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쌀 소비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바탕으로 한 실질적인 대책과 변화가 시급한 때다.